[신학이 뭡미꺼?] 신부님, 신학을 우찌해야 합니꺼? 지난번에 ‘신학’은 내가 바로 여기 숨 쉬고 살고 있는 현실 세계, 곧 ‘지금, 여기서’ 내가 믿고 사는 신앙의 내용들을 나의 말, 나의 물음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신학을 우리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신부님, 신학을 우찌해야 합니꺼? 우리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다양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쓸 수 있으며, 스스로 생각해 보고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 자신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동시에 우리에 대한 자신의 구원 의지를 곰곰이 새겨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에 우리 인간은 하느님 말씀을 그저 듣기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 말씀의 뜻을 곱씹어 보고, 묻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조금 거창하지만 인간의 본질, 세상의 원리, 진리의 원천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고뇌하고, 때때로 분석하고 종합하며 결론을 내기리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철학하는 인간, 필로소피쿠스(Homo Philosophicus)’입니다. 비단 철학자들만이 아닌, 우리도 분명 인생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하며 삽니다. 때론 피곤한 세상에서 그저 느끼는 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학, 곧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 삶 안에서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찾는 이유를 헤아려 보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 지혜를 사랑하는 인간의 방식, 곧 ‘철학’이 필요합니다. 철학이 인간의 이성으로 세상과 삶의 논리를 찾아보는 것이라면, 신학은 그 세상을 지탱해 주는 신비, 곧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존재에 대한 신뢰로 세상과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여정(旅程)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정 안에서 철학은 신앙을 더욱 깊이 그리고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우리가 신앙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며, 왜곡된 진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과 은총을 깨달아 가는데 철학의 방법론’에서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믿는 것이라고 한때 우리는 오해했습니다. 생각이 많으면 믿음을 방해한다고, 진정한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라고 강조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는, 질문하지 않는, 성찰하지 않는 믿음은 왜곡되고 변질될 위험이 많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배움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신학 역시 올바른 신앙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적 전통에 대한 질문이든, 오늘의 상황에 대한 질문이든, 정직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면 신학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신학은 ‘가르치는 일’이라기보다는 ‘경청하고 배우는 일’입니다. 신학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상호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학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경청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린 대화입니다. 또한 신학을 하려면 자기 성찰省察을 수반해야 합니다. 성찰은 자신을 성찰하는 일이지 타자를 성찰하는 일이 아닙니다. 타자를 규정하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일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은 언제나 자기반성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학하는 일은 신앙과 복음의 시선으로 우리의 말과 신념, 감정과 행동, 관점과 태도를 사유하고 성찰하는 과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삶과 신앙의 자리에서 우리의 말, 행동, 태도가 정말 복음적(신앙적)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그 실제적 내용을 생각해 보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하는 신앙의 말들과 그저 종교적 관습에 따라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과 태도들이 신앙의 징표일 수 없습니다. 생각하고 공부하고 성찰하는 사람만이 참다운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신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하느님이 온 인류와 세상의 원천이심을 고백하고 인간이 찾는 지혜의 길에서 참된 진리이심을 고백하는 영성의 길입니다. [2023년 2월 5일(가해)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3면, 변종원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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