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203.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148항)
약자를 돕는 것이 ‘사람다운’ 사람 본연의 모습 비신자1: 오늘도 장애인들 시위 때문에 지각을 했어요. 매번 너무 짜증납니다. 비신자2: 서울교통공사에서 시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합리적이에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건 용납돼선 안 됩니다.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한 부정적 선례가 될 수도 있구요. 비신자3 : 물론 장애인들의 안타까운 처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가톨릭교회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과연 공정할까? 고대에는 동태복수법이 존재했었습니다. 피해자가 받은 고통만큼의 형벌을 가해자에게 부과하는 법제입니다. 초기에는 피의 보복 원칙 형태로 시행됐으나 실행도 어렵고 이 법 자체가 결코 공정할 수 없기에 점차 금전적 보상 형태로 전환됐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살인에 살인으로 대응하는 법으로는 사회의 공정도, 정의도 구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도 동태복수법을 언급하는데(탈출 21,23-25; 레위 24,17-21; 신명 19,21)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태복수법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폐지됐습니다. 인권 경시와 폭력의 악순환 때문입니다. 오히려 박해와 학대에 대해 보복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지요.(마태 5,38-48)
사람 본연의 모습 성경은 늘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을 한결같이 강조합니다. 동태복수법이 암암리에 진행되던 머나먼 구약 시대에 복수와 보복을 지양하고 고아나 과부, 이방인과 같은 약자들의 권리를 옹호해 주라는 이야기는 대단히 파격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약한 이웃들과 나의 처지를 동일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 주고, 더 나아가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를 극복하게 하고 인간과 사회에 희망을 주는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문이지만, 약자를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그것이 사람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고,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회와 세상을 건강하게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다움을 위하여 사회와 세상에는 크고 작은 분쟁과 갈등이 존재합니다. 저마다 처지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충돌이 불가피하지요.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인식과 태도입니다. 핵심은 나보다 약한 이들의 처지를 생각해 주고 나의 것을 양보하려는 마음입니다. 나아가 내가 비록 어렵지만 누군가를 도우려는 생각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야말로 세상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필자도 장애인들의 시위로 인해 불편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이 상황을 풀기 위해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장애라는 아픔을 겪어 온 그분들의 마음을 비장애인인 우리가 공감해 주는 것이 먼저 필요해 보입니다. 정녕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장애인들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 온전한 인간 주체이다. 그들의 육체와 능력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제약과 고통에도 그들은 더욱 분명히 인간의 존엄과 위대함을 드러낸다. 장애인들도 모든 권리를 가진 주체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능력에 따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148항) [가톨릭신문, 2023년 2월 5일,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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