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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주님수난꽃의 여러 상징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3-03 조회수1,336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주님수난꽃’의 여러 상징성

 

 

그리스도인들은 중세기 이래로 여러 가지 식물이나 사물들을 보면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을 연상했다. 그중에는 유럽 대륙이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래하는 식물이 하나 있다. ‘주님수난꽃’(Passion flower, 학명: Passiflora)이다. 이 꽃에 대해서는 이 잡지 2018년 3월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다.

 

이 꽃에서 우리는 주님의 수난을 나타내는 상징성 여러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식물은 우리나라에서 ‘시계꽃’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생김새가 시계처럼 생긴 데서 나온 이름이다.

 

15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자, 16세기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이 앞다투어 이곳을 찾았다. 그들은 어느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보자마자 매료되었고, 이내 이 꽃이 여러 가지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골고타에서 겪으신 수난의 면면들과 연결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가운데 예수회 출신 선교사들은 이 식물을 ‘주님 수난의 꽃’ 또는 ‘주님 오상(五傷)의 꽃’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그리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식물을 가져갔으며, 그리하여 이 식물은 유럽과 세계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선교사들은 이 식물의 보라색 꽃을 보면서 주님 수난을 나타내는 많은 상징성들을 읽어냈다. 그리고 이 꽃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으심을 배우고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절묘한 선물이라 여겼다. 게다가 꽃의 색깔이 대체로 보라색이라는 점 또한 사순시기의 전례 색상과도 맞아떨어졌다.

 

- 주님수난꽃 열매

 

 

그렇다면 주님수난꽃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해서 읽어낼 수 있는 상징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끝이 못대가리처럼 둥글게 생긴 암술 3개는 그리스도의 손과 발을 꿰뚫어 그분을 십자가에 매단 못 3개를 나타내고, 5개의 수술은 그리스도의 몸 5곳에 생긴 상처를 나타낸다. 꽃잎을 둘러싸고 원형으로 나 있는 부화관(副花冠, 꽃갓과 수술 사이 또는 꽃잎과 꽃잎 사이에서 생겨나는 꽃잎보다 작은 부속체)은 그리스도께서 머리에 쓰셨던 가시관을 나타낸다. 또는 그분이 장차 누리실 거룩한 영광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수술들 위로 솟아 있는 씨방은 그리스도께서 매질을 당하실 때 그분을 결박하는 데 쓰였던 기둥을 나타낸다. 그리고 씨방 아랫부분에 나 있는 수많은 가닥의 가느다란 꽃실들은 그분을 매질하는 데 사용된 채찍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식물의 잎은 대체로 창의 날과 같은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르는 데 사용된 창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꽃잎들의 아랫부분에 박혀 있는 둥근 반점들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대가로 받은 은전 30개를 연상케 한다.

 

한편, 이 꽃의 겉 꽃잎은 10개인데, 이는 수난하시는 스승을 버리고 도망친 10명의 사도들을 나타낸다. 12명의 제자들 중에서 성모님과 함께 주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아래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성 요한과 배반자 유다를 제외한 숫자다. 그런가 하면 꽃의 포엽(苞葉) 3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나타낸다고도 했다.

 

나아가 이 식물의 열매도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되었다. 말하자면, 동그란 모양의 열매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위대하고 완벽하며 으뜸가는 희생제물로서 당신 자신을 바쳐서 구원하러 오신 죄 많은 세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 파를라스카의 스케치



주님수난꽃은 그리스도 수난을 상징하는 식물로 교회에 받아들여져

 

그러하기에 주님수난꽃은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식물로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17세기 초에 그려진 2점의 스케치화가 전해 오는데, 1609년에 파를라스카(S. Parlasca)가 그린 것과 1610년에 페트렐리(E. Petrelli)가 그린 것을 보면, 다분히 의도적으로 주님 수난의 상징성을 강조하여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이 식물의 뿌리와 잎을 이용해서 차를 만들어 마셨는데, 간질, 히스테리, 불면증을 다스리는 데 효력이 있고, 통증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 또한 이 식물의 놀라운 효능을 알고 나서는 특히 신경과민을 진정시키는 데 이용했다고 한다. 이 점은 주님수난꽃의 또 다른 상징성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죄를 짓고 타락한 인간의 고통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처럼, 이 놀라운 식물은 창조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속성을 통하여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과 통증을 진정시켜 주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 600여 종의 주님수난꽃이 분포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브라질에서 자생한다. 이 식물은 지지대를 타고 오르며 빠르고 왕성하게 자라면서 1년 내내 그늘과 고운 색의 꽃을 제공한다. 그리고 일부 품종은 식용으로도 이용된다. 열매를 날로 먹거나 음료, 디저트, 잼,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서 먹는다.

 

다음은 브라질의 시인 카툴루 다 파이샤웅 세아렌시(Catulo da Paixão Cearense, 1863-1946)가 쓴 ‘주님수난꽃’이란 제목의 시다.

 

심심산골에서 사는 한 젊은이를/ 주님수난꽃의 열매가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만났을 때/나는 그에게 말했다./ 형제여 말해 주시오./ 왜 주님수난꽃은 보라색으로 피는지를.

 

그 젊은이가 내게 말해준 이야기를/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주님수난꽃이 왜/ 보라색을 띠게 되었는지를.

 

주님수난꽃은 한때 흰색이었다./ 그런데 더는 희어질 수가 없었다./ 사랑보다 더 희어질 수가/ 달빛보다 더 희어질 수가 없었다./ 그곳 척박한 숲의 구석구석에서 꽃들이 피어났는데/ 주님수난꽃은 마치도 목화송이 같아 보였다.

 

그런데/ 만약에 아주 오래전의 어느 날이,/ 기억에서조차도 희미해진 그 한 달이,/ 그때가 5월이었다면, 아니면 6월이었다면.

 

이 숲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형벌을 선고받으셨고/ 망치질에 박혀 들어가는 못에 꿰찔려/ 돌아가신 그때가/ 만약에 1월이거나 아니면 12월이었다면.

 

그리고 그토록 처참한 장면을 보고/ 온 세상이 슬퍼하며 울었다./ 들판이 울었고,/ 너도밤나무들이, 실개천들이 울었다./ 재잘대며 노래하던 새들도 울었다./ 또한 어치와 오렌지 나무도 울었다.

 

그리고 거기, 그 십자가 곁에/ 그 아래에 꽃들을 그득 피운/ 꽃나무 한 포기가 있었다./ 우리 주님의 피는 위에서 아래로/ 그분의 발까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피는 그분의 발에서/ 그 꽃나무 위로 떨어져 내리며/ 거기에 피어 있는 꽃송이들을 모두 물들였다.

 

모두들 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라./ 내가 그 산골 젊은이에게서 들은 것처럼,/ 주님수난꽃이 보라색을 띠게 된 이유를.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3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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