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215.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49항)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그리스도인 -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기념관. 독일군 고위 장교이면서 수많은 유다인을 구한 빌헬름 호젠펠트가 의인으로 등록돼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로써 말합니다. 모든 폭력의 생각을 떨쳐야 합니다. 갈등과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자아내는 활동, 결정, 증오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비극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을,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눈물이 아니라 고용과 안전을 제공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성 요한 23세 교황, 1961년 주님 성탄 대축일 담화문) 홀로코스트, 인류의 상처 ‘벤허’, ‘왕중왕’,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침략과 전쟁, 그 안타까운 역사 속에서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겪은 고통과 죽음, 홀로코스트(유다인 학살)에 대한 묘사입니다. 현대의 이스라엘과 다르게 성서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진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둘째, 영화의 유다인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모든 것을 빼앗겼음에도 극적으로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2002년 작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폴란드 태생 유다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1943년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던 그의 가족은 나치에 의해 강제 이주명령과 탄압을 받습니다. 슈필만은 천운으로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건 면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나라로 보내야만 했고 강제노동과 무참한 폭력을 당해야 했으며, 비참한 도피 생활을 합니다. - 빌헬름 호젠펠트 출처 위키미디어 선과 악이 뒤섞인 현실 작품에서 묘사되는 폭력은 무척 참혹합니다. 독일군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학대하며 심지어 휠체어를 탄 노인을 창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은 어디 있냐며 울부짖고 어떤 이들은 무력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슈필만은 그 속에서 목숨을 부지해 갑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도우신 걸까요? 조력자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실존 인물인 빌헬름 호젠펠트라는 독일군 고위 장교도 있는데 그는 수많은 유다인을 구했다고 전해집니다. 종전 후 그는 소련군 수용소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고 슈필만은 그를 구하지 못한 것을 너무나 아쉬워했다 합니다. 호젠펠트는 2009년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솀에 유다인을 구한 의인으로 등록됩니다. 나치가 만행을 저질렀으나 독일사람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듯, 이처럼 영화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란 자신을 구해 준 호젠펠트에게 슈필만이 묻습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요?” 호젠펠트가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뜻이겠지요.” 영화는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난 평화를 묘사합니다. 그것은 어떤 평화일까요? 바로 하느님의 평화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는 인간이 벌이는 전쟁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악순환, 무자비한 복수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 주며 저주와 증오마저도 치유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아픔이 많습니다. 그래서 평화가 늘 절실하며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 평화는 폭력과 죽음의 한복판에서 사랑과 용서라는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한 우리의 행동이 이웃과 세상을 살립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평화에 대한 기쁜 소식인 복음을 선포하는 일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평화의 복음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신비가 깃들어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3항) [가톨릭신문, 2023년 4월 30일,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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