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33]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다 (1) : 미래의 기억 우리의 믿음은 어디를 향할까요? 무엇보다도 우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이루신 구원일 것입니다. 2천 년 전 팔레스티나의 작은 마을에서 30여 년을 사셨고, 약 3년 정도 공생활을 하셨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단순히 과거를 향해있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시리라는 것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과 관련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향해 있습니다. 신학 용어 중에 ‘미래의 기억(memoria futuri)’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억이란 보통 과거에 대한 것인데, 약속된 미래에 대한 희망, 믿음을 가리키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기억해야 할 미래 중의 하나가 바로 ‘육신의 부활’입니다. 한편 현대 과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근본 구성 요소가 탄소, 수소, 산소, 질소라는 것을 밝혀냈고, 생명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사후 우리의 몸은 흙으로, 혹은 재로 돌아갑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지요. “육신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 고백이 진지하기 위해, 육신이라는 말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경에서 육신은 순전히 물질적인 어떤 것, 인간의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육신은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영혼의 무덤도 악의 원리도 아닙니다. 육신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이고, 하느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전체로서의 인간’을 가리킵니다. 즉 육신은 하느님과 이웃을 만나는 장이며, 하느님, 그리고 인간들과 통교할 수 있는 가능성이요 조건입니다. 육신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육신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기도, 자신을 실현하기도 합니다. 나의 생각, 감정을 표현하고, 나의 꿈과 자아를 이 세상 안에서 실현합니다. 따라서 육신은 영혼과 구분되지만, 영혼이 인간 역사 안에서 실현된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는 때로 육신이 우리 자신을 감추기도, 속이기도 한다는 것을 압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을 감추기도 하니까요. 한편 육체는 이중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우리는 육신이 때로 이기심, 탐욕, 권력욕, 죄 등등에 매이기도 한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육신은 사랑, 헌신, 봉사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가 육의 지배를 받는 육신이라면 후자는 영의 지배를 받는 육신, 혹은 영적인 몸이라고 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코린 15,44) 여기서 영적인 몸(육신)이란 어떤 영적 실체라기보다는, 영에 의해 그 특성이 규정되는 육신, 다시 말해 하느님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고 지배되는 육체를 가리킵니다. 이 경우 육체는 어떤 물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 하느님의 차원에 속해 있습니다.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이 영적인 몸에 대한 미래의 기억입니다. [2023년 10월 29일(가해) 연중 제30주일 서울주보 4면, 최현순 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