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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베아◆ 인쇄

원어명 Gouvea, Alexander de

   Gouvea, Alexander de(1571~1808). 구베아 또는 고베아(Govea). 성 프란치스코회 회원. 중국(中國) 선교사, 수학박사, 북경교구장, 주교. 중국명 탕사선(湯士選). 자(字)는 자선 (子選). 포르투갈의 에보라(Evora)에서 출생. 1782년 12월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북경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2월 인도의 고아(Goa)에서 주교성성되었고, 마카오를 거쳐 1785년 북경에 도착, 중국 청(淸)의 건륭제(乾隆帝)와 친교를 맺은 후 흠천감정(欽天監正). 국자감 산학관장(國子監算學館長)으로 중국의 역산서 편찬에 참여하는 한편 중국 선교에 있어서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발표한 교서 를 적용, 공자 숭배. 중국의례. 조상 숭배를 철저히 금지시켰다. 또한 조선 선교에도 관심을 갖고 1790년 초 동지사(冬至使) 일행을 따라 북경에 온 윤유일(尹有一)을 만나 이승훈(李承薰)과 권일신(權日身)의 편지와 함께 선교사파견없이 스스로 창설된 조선 교회의 기원과 조선에서의 박해소식 등을 전해 듣고 이를 교황청 포교성성에 보고 했으며 귀국하는 윤유일에게 가성직제도의 부당함을 알리는 동시에 선교사파견약속하고 조상제사의 금지를 명령, 결국 조상제사의 금지령으로 인해 조선정부는 천주교를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종교로 탄압하게 되었다.

   1790년말 레메디오스(dos Remedios) 신부를 조선교회로 파견했으나 신해박해(辛亥迫害)로 실패했고, 1792년 교황청으로부터 조선 교회의 관할권을 부여받은 후 이듬해 다시 북경에 온 윤유일지황(池璜)을 만나 신해박해의 소식을 전해 듣고 선교사 파견을 재차 약속, 1784년 12월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입국케 하였으며 그 후에 주문모 신부와 조선 교우들이 보낸 서한의 내용을 근거로 당시 중국 사천(四川) 교구장 마르탱 주교(파리외방전교회 소속)에게 소위 '구베아 주교의 서한'이라 불리는 조선 교회의 창설과 박해 소식을 적은 서한을 보냈는데, 이 서한은 마르탱 주교에 의해 불어로 번역되어 라틴어 원문과 함께 1798년 유럽으로 보내졌고, 이어 각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유럽 각지에 기적적인 조선교회의 창설과 혹독한 박해 소식이 소개되었다. 구베아는 1808년 7월 북경에서 사망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Relation de l'etablissement christianisme dans le royaume de Coree≫(1798), ≪Extractum Episolae Excellentissimi, Admodumque Reverendi Episcopi Pekinensis, ad Illustrissimum Admoduinque Reverendum Episcopum Caradrensem≫(Pekini, 15 August, 1797), ≪Lisboa≫(1808) 등이 있다.

   [참고문헌] 교회와 역사, 제15호, 1977. 1. 10. /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崔奭祐, 韓國天主敎會史, 上 · 中, 분도 출판사, 1979-1980.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