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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인쇄

한자 靈感
영어 Inspiration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끼치는 성령의 특별한 영향이다. 영감은 성령의 선물들 가운데 하나를 실천하거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얻도록 해 준다.

  성서의 영감

  성서의 영감은 거룩한 저자들이 먼저 올바로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충실히 기록하며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여 모든 것, 특히 쓰도록 명령받은 것만을 틀림이 없는 진리로 완벽히 표현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성령의 초자연적 영향이다. 성서의 영감을 불어넣으실 때에는 하느님께서 몸소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모든 책을 그 각 부분과 함께 전체를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正經)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이 책들이 성령감도로 기록된 것이고 하느님께서 저자이시기 때문이다”(「계시 헌장」 11항). 그러나 이 말은 하느님께서 거룩한 저자들을 단순히 받아쓰는 비서로 사용하셨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인간 저자들에게 단순히 책의 내용과 표현 방식을 모두 가르쳐 주셨음을 뜻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 저자는 이성을 갖춘 살아 있는 도구로서 자기 안에 또 자기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여 기록하였다. 따라서 성서 저자가 기록한 책에서 저자의 분명한 재능과 개인적 특성을 모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 저자를 활용하셨으므로 성서에 나오는 것들은 인간 사이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양식을 따른다. 본질적인 ‘하느님의 말씀’(히브 4,15)께서 죄를 제외한 모든 일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듯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은 잘못 말고는 인간의 언어가 지닌 모든 특질을 그대로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예언자들, 지혜 문학 저자들, 사제들이 자기들을 가르칠 때 성령감도하심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들은 모세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다섯 권의 책, 곧 모세오경(‘토라’ 또는 ‘율법’으로도 알려져 있음)이 가장 높은 수준의 영감을 받았으며 그보다 조금 못한 것이 예언서들이고 더 낮은 것이 ‘성문서’라고 생각하였다.

  신약성서의 거룩한 저자들은 약 350회에 걸쳐 구약성서를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책들의 참된 저자가 하느님이시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공유하였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영감의 유형을 구분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신약성서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3,15-17)와 베드로의 둘째 편지(1,19-21)에서 구약성서 책들의 영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들은 베드로의 둘째 편지(3,14-16)에서 신약성서가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교회의 교부들은 성서가 하느님께 기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성서의 참된 저자이시고, 인간 저자는 그분의 도구라고 보았다. 그들은 2세기에 구약성서신약성서를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며 성서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교황다마소 때 있었던 제4차 로마 교회 회의(382년), 북아프리카 히포 레기우스에서 열린 교회 회의(393년), 제3차 카르타고 교회 회의(419년), 젤라시오 교령(성 젤라시오 1세 : 494-496년)에서 신약성서구약성서에서 영감을 받은 정경 명단을 발표하였다. 피렌체 공의회(1438-1445년)도 전체 정경에 관해 언급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6년 4월 8일 신구약 성서의 전체 정경을 정식으로 결정하였다.

  이 사실은 영감의 중요한 특질을 지적한다. 영감은 독자 안에서 만들어진 종교적 열정에서 유래하는 것도 아니요, 책 자체의 물질이나 형태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성서가 예언자사도에게서 기원한다는 것도 아니요, 거룩한 저자가 자기 책이 영감받은 것을 목격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는 것도 아니다. 영감의 기준은 다만 가톨릭 성전(聖傳)에서 기원할 뿐이다.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는 공식 증거는 성전을 통해 사도들에게 계시되었고 전체 교회에 전수되었다.

  성서의 영감은 곧바로 ‘무류성’(無謬性)과 연결된다. 성서의 무류성이란 성서가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성서에 기록된 이론과 사실은 진실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 저자들이 의도한 성서의 말씀들은 항상 진실하다.

  어떤 사건이나 주제의 ‘진리’는 각 문학 유형마다 다른 식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진리이다. 그러므로 성서 전체가 참되며 성서의 모든 부분이 절대적으로 진실되다. 성서의 모든 말씀은 각 문학 유형이 증거하는 그대로 참되다.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 예언적, 시적 양식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계시 헌장」 12항).

  전례적 영감

  전례 거행 때 사용되는 성서 본문들 역시 동일한 영감을 받았다. 전례 본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전례 본문들은 오늘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영감을 받은 그 말씀을 다시 읽는 것이다. 전례 본문들은 전례적 선포 안에서 ‘더 깊은 의미’를 갖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를 ‘전례적 영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 백성에게 다시 읽어 주고 해석해 주는 것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특질을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일반적인 ‘영감’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1고린 12,4-11 참조). 그와 같은 영감은 글로 기록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계시의 시작과 발전을 포괄할 뿐 아니라, 성서의 문자가 전례교도권을 통해 살아 있는 교회에 의해 작용하고 신앙인들에 의해 동화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서 구약성서전례 그리고 설교를 받아들인 사도 교회는 이전의 원천들을 이용한 저자와 같았다. 사도 교회구약성서의 저자와 동일시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고 사도들이 설교를 하면서 구약성서 전체는 새로운 의미를 받는다. 그러기에 ‘영감의 은사’는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은사들의 일부이다.

  더 나아가 주로 하느님의 말씀에 기반으로 두며 하느님의 말씀으로 부양되는 모든 전례 거행은 새로운 사건이 되고 새 의미와 힘으로 ‘말씀’ 자체를 풍요롭게 한다(「미사 전례 성서 머리말」3항). 이처럼 전례 거행은 하느님의 말씀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실재가 그리스도의 ‘선포’와 연관되는 것처럼 전례는 성서와 연관된다. 성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항구히 예고하는 데 비해 전례 거행은 그 계획을 의식적(儀式的)으로 현실화한다.

  성서에 나타난 구원의 계시는 전례 안에서 완성된다.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완성되어 전례는 항상 ‘활동 중인 계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서에서 읽는 사건들은 전례에서 실현되는 것과 동일한 사건들이다. 성서를 올바로 해석하는 것은 전례이다. 전례는 구원 역사의 차원에서만 성서를 해석한다. 그리스도는 성서에 예고된 계시이시다. 그리스도는 전례 안에 현존하고 전례 안에서 통교되는 계시가 되신다.

  성령은 전례 회중 안에서 작용하거나 영감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가 외적으로 듣는 하느님의 말씀이 내적 효과를 낼 것이다. 성령의 ‘영감’과 도움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전례 거행의 기초가 되고 우리 삶 전체를 지탱하는 규칙이 된다. 성령의 작용은 전례 거행 전체를 ‘선행하고 동반하며 완성’한다. 성령은 또한 신도들 전체의 선을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한 모든 것을 각 개인에게 가져다주기도 한다. 동시에 성령은 모든 이의 일치를 강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선물들을 부여하고 그 선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작용하도록 촉진한다(「미사 전례 성서 머리말」 9항).

  ‘전례적 영감’은 “성서를 특히 그리스도교적으로 읽게 해 준다. 성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본래의 저자(곧 하느님)께서 의도하셨던 성서의 모든 의미가 작동한다. 그것은 성서를 신학적으로 읽는 것이다. 성서가 쓰일 당시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기 위해 언어학적 ·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를 읽는 것은 합법적이고 유용하며 필요하다. 성서를 계속 읽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독서는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C. Vagaggini, Theological Dimensions of the Liturgy, p. 486).
출처 : [전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