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택 보좌주교의 신앙과 삶> 첫 만남에도 형언하기 힘든 향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눈빛에서도 그윽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사람. “하느님 뜻에, 주님의 계획에 내어맡길 뿐”이라는 정순택 서울대교구 신임 보좌 주교(주: 효성초등 49회)는 한 눈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공학도가 만난 하느님은 어떻게 그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심어놓았을까. 느지감치 들어선 구도의 길에서 그가 만났을 법한 하느님은 이미 숱하게 우리에게도 찾아오신 바로 그분이심을 깨닫는다
성가정에서 뿌려진 성소의 씨앗 1961년 대구 대봉동에서 정운장(요셉)씨와 조정자(데레사)씨 사이의 1남2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정 주교는 어린 시절부터 영락없는 ‘모범생’이었다. 대한 국제법학회 회장, 영남대학교 법대 초대학장, 인도법 연구소 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포콜라레 운동의 솔선자로서 자녀들에게 큰 신앙의 유산을 남겼다. 방학 때면 온 가족이 매일 새벽 평일미사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삼남매가 대입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한 자리에 둘러앉아 묵주기도를 바치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누나 정혜경(헬레나·55·인천 부평1동본당- 주: 효성초등 47회)씨가 기억하는 정 주교는 나서 지금껏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착하고 속 깊은 동생이다. 조그만 체구에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한 정 주교는 인기투표를 하면 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든든한 친구였다. 정 주교의 고종사촌 동생인 조정래 신부(서울 방배동본당 주임)의 기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 나이에도 장난이라고는 모르는…, 늘 진지하고 따뜻한 형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편안하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언젠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던 셈입니다.”
두려움 없는 길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아빌라의 데레사 성녀)
아버지의 삶을 따라 한 발 한 발 학자로서의 길을 걸어가던 정 주교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은 어느 날 하늘을 갈라놓는 ‘번개’처럼 순식간에 찾아왔다. 서울대학교 공대를 다니던 3학년 여름방학, 대구에서 열린 마리아폴리(‘마리아의 도시’라는 뜻의 포콜라레 모임)는 정 주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부르십니다.”
대전교구 부제가 쏟아낸 성소체험담은 천둥처럼 정 주교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주님의 부르심을 느끼자 정 주교의 두려움 없는 도전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느꼈습니다. 온 세상이 바뀌어보였습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4년을 마치고 가톨릭대학교로의 편입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당연한 수순이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허리를 다쳐 치료를 받는 중에 가르멜 영성을 다룬 서적을 접하게 된 정 주교는 다시 한 번 주님의 부르심을 가르멜 수도회에서 발견하게 된다. 1986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한 정 주교는 지금껏 두려움 없이 구도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항해
“구들장은 늦게 데워지지만 한 번 데워지면 좀체 식지 않습니다.”
1992년 종신서원을 한 정 주교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가르멜 수도회 인천수도원 부원장 겸 준관구 제1참사, 2008년부터 2009년까지는 한국 관구 제1참사 등을 거쳐 2009년 5월부터 가르멜 수도회 로마 총본부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을 맡아왔다. 신앙의 모범생으로 돌아온 정 주교는 올곧지만 적이 없는 소통의 달인이다. 이 때문에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은 서울대교구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0년 선종한 모친이 남긴 말은 정 주교가 걸어갈 길을 짐작하게 한다. “누구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누구에게는 정말 은혜로운 선물이고 성사일 수 있습니다. 선물 같이 주어진 시간을 잘 가꾼다면 그 자리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기사출처: 가톨릭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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