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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6주일 - 하느님과의 信義[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7 조회수849 추천수8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찬미예수님

 

지난 주하고 날씨가 확 달라졌죠?

더워서 난리칠 때가 언제인데 요즘은 또 추워요.


참, 하느님도 인간 비위 맞추려면 참 어렵겠어요.

천국도 냉난방 기계가 하도 오래 되어서 요즘 교체작업을 하고 있데요.

그래서 더울 때 춥고, 추울 때 덥고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튼 기도하기도 좋을 때이고 순례하기도 좋을 때입니다.

감곡 매괴성모순례지는 10월2일 성체대회준비 때문에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오늘 오후 2시 미사에 1300명의 순례자들이 미사를 합니다.


성체대회가 10월초에 있기 때문에 대체로 10월 달이 순례객들이 가장 많을 때입니다.

공사도 하다가 성체대회 때문에 중단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순례자 분들, 불편한 점이 있으실 겁니다.

성모동산도 바로 올라가시지 못하고 빙 둘러서 거꾸로 올라가야하는 상황이라 불편한 점이

있으시더라도 애덕으로 잘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한국말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어려워요.

저도 말을 많이 하고 사는 사람이지만 참 어려워요.

그러니 외국 사람들이 한국말 배우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우리나라 말 중에 참 하기 힘든 말이 있죠?

 

들에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한번 해보세요.

들에 콩깍지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여러분들은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저는 이거 할 때마다 항상 발음이 탁탁 걸려가지고

들에 콩깍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이 말도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면 안 될 것도 없지만

조금만 빨리하면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혀가 꼬입니다.

그러나 지금 얘기했던 [콩깍지 안 깐 콩깍지] 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말이 있어요.

뭔지 아십니까?


그 말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 또는 ‘아니요.’

분명히 ‘예’ ‘아니요’ 는 말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말이라는 뜻은 아닐 겁니다.


서두에 얘기한 들에 콩깍지는 자꾸만 연습하면 안 될 것도 없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예’ ‘아니요.’ 라는 이 단어 때문에

인생의 질이 달라지고 만남의 차원이 달라질 때가 많습니다.


‘예’ , ‘아니요.’ 

다른 사람과의 약속에 대한 말이기 때문에 대단히 어렵다 그 뜻입니다.

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아니요’ 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아니요.’ 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예’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이제껏 사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 한 것 100프로 다 지키고 사셨습니까?

아닐 겁니다.

먼저 어떤 사람에게 약속을 했지만 나중에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약속을 취소할 때, 우리는 ‘예’라고 했던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를 깨닫습니다.

만일에 ‘예’ ‘아니요.’ 를 아주 흔히, 아무런 어려움 없이 남발한다면

그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신의가 없는 사람, 심한말로 사기꾼이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앞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저 사람의 돈을 뺏기 위해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예, 예~~’ 하고 뒤에서 뒤통수를 칩니다.

분명히 사기꾼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약속을 하고 계약을 하며 살아갑니다.

부모님과의 약속, 부부끼리의 약속

형제의 사랑

친구사이의 우정

또는 동료 사이에도 우리는 어떤 약속 속에서 살아갑니다.


형제자매님들 혼배성사 받을 때, 뭐라고 약속했습니까?

‘신의와 사랑과 존경을 바치겠습니까?’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면 혼배가 안 되었겠지요?

‘예’ 라고 했습니다.

‘신의와 사랑과 존경을 바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사랑과 신의와 존경 중에서..........

당연히 신의죠.

신의가 깨져버리면 사랑이고 존경이고 다 헛되고 헛된 겁니다.


사람사이에 신의가 깨져버리면 다른 어떤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이 여자에게 정말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사랑을 드리고, 존경을 드리고, 신의를 보이겠습니다.’ 했는데

부부사이에 신의가 깨지면 아무리 그 남편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열손가락에 끼워다 준다 한들

아무리 좋은데 데리고 다니고 밍크코트로 온 몸을 두르게 한들, 수백억짜리 집에서 살게 한들

그 상처는 오래갑니다.


‘예’ 해놓고 사는 것은 ‘아니요.’ 하면서 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만큼 ‘예’, ‘아니요’는 참 어려운 말입니다.

부모와의 약속을 저버릴 때 불효자가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의를 잊어버리면 의지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약속이든지 지키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들, 우리는 이렇게 인간끼리의 약속보다 훨씬 더 큰 약속,

보다 큰 계약을 우리는 분명히 맺고 살아갑니다.

그 계약은 바로 누구와의 계약입니까?

누구와의 약속입니까?

하느님과의 약속


인간과의 약속은  혈연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인정에 끌려서 한 약속일 수도 있고

돈이나 이익 관계 때문에 한 약속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것을 결코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나와 하느님과의 약속은 나의 생명을 두고 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지킬 때 우리는 영원한 삶을 얻을 것이고,

이 약속을 배반할 때는 바로 바로 죽음이 옵니다.


여러분, 언제 하느님과 약속을 했습니까?

가장 처음은 세례성사 때 약속을 하셨을 겁니다.

천지의 창조주 하느님을 믿습니까? 했을 때 여러분들은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이 첫째 자리에 여러분에게 올라가 있지 않습니까?

 

양심적으로 지금 여러분들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여러분의 첫째 자리에 계십니까?

천만의 말씀....하느님은 첫째 자리에 없습니다.

자식이 올라가 있던지 지 건강이 올라가 있던지, 돈이 올라가 있던지....

아니면 취미생활이 올라가 있던지

하느님은 어쩌다 한 번 꺼내 보는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금송아지 만들어놓고 섬기는 게 우상숭배가 아니지요.

세례 때 분명히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둔다고 약속을 해 놓고도

살아가는 모습은 절대 첫째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세상 걱정을 첫째 자리에 둡니다.

 

성서 말씀에 하느님이 제 자리에 계실 때는 나머지 것은 다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누가 주는 겁니까?

자식의 생명은 누가 연장시켜주는 겁니까?

결국은 하느님입니다.

건강도 누가 주십니까?

하느님입니다.

주시는 분은 저 밑바닥에 처박아 놓고 받을 것만 생각해서 그걸 위에다 올려놓으니....

하느님이 제자리에 모셔질 때 그 밑에 것은 저절로 얻는 겁니다.


<주님의 기도>

우리가 청하는 기도가 앞부분에 나옵니까? 뒷부분에 나옵니까?

우리들에 대한 기도가...뒤에 나옵니다.

앞부분에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존경이 나옵니다.


뒷부분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고

과거에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고

앞으로의 유혹에서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이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모셔져 있을 때 나머지 것은 다 정리가 되지만

우리가 어리석은 인간들은 급할 때만 하느님을 찾고 평상시에는 하느님 첫째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분명히 세례 때 내 생명의 주인이시오, 천지의 창조주 하느님을 믿습니까?

하고 사제가 물었을 때 “네!”  하고 목청 터지게 대답은 해 놓고 살아가는 것은

늘 하느님은 밑바닥에 두고 거들 떠 보지 않습니다.


세례 때 여러분들 약속했습니다.

미신을 끊어버립니까?
끊어버립니다.

약속했으면서도 현재에 나와 있는 통계에 의하면 세례 받고 나서도 점집이나

철학관을 기웃거렸던 사람이 40%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중에서도 40% 이상은 점집이나 철학관 기웃기웃거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느님께 매달리기 보다는 어디서 무슨 이야기 들리면 솔깃해서 족집게

도사 하나 나타났다고 하면 돈 봉투 들이밉니다.

헌금할 때는 오천원 내는 것도 발발발 ~~떠는 사람이 유명한 무당이 나타났다고 하면

천주교신자가 수백만 원 들여서 굿을 합니다.


왜 하느님 앞에 사기칩니까?

“예!”  해놓고 왜 살아가는 꼴들은 우상에 빠져서... 미신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합니까?

“예” 하고 대답한 사실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아니오” 라는 행동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여러분은 세례 성사 때 약속했지만 저는 사제 서품 때 사제로서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사제생활 25년을 살아가면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기를 쓰고 살아갑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겁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다고 비록 숨이 끊어지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당당하지만

하느님과의 신의를 저버릴 때는 하느님과의 사랑이고 존경이고...

부부지간에 관계가 끊어지듯이 다 끊어집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믿고 신뢰합니다.

인간과의 약속을 어긴 사람은 거짓말쟁이 사깃꾼이라고 부른다면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긴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저 모르니까 한 번 대답 좀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 하자

둘째는 “예” 하고 갔습니까? 안 갔습니까?

안 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가서 이웃에게 사랑 베풀고 너의 행동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네가 해야 할 바를 충실히 지키며 죄를 끊고 악의 유혹을 끊어라!

우리는 수없이 고백소에서도 “예, 예"

사제가 훈계를 할 때마다 보속을 줄 때마다 

“예, 다시는 그 죄에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수없이 “예”하고 대답을 합니까?

"예" 하고 대답을 하고 실행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아니오.” 대답하고 나중에 실행하는 자가

훨씬 더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예”하고  대답을 한 다음에

충실한 행동을 하는 자가  훨씬 더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킬 때 영원한 삶과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을 가질 때 시장에서 물건 고를 때처럼

‘이것 살까,...저것 살까...’ 하다가 막연한 생각에 신앙을 집어든 것이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세례 때 교리기간을 통해서 준비를 하고 “예” 하고 대답했을 때는 생명을 바쳐서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두겠습니다..하는 약속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과의 약속은 지키려고 기를 쓰지만

하느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어찌 그리 신의를 저버리십니까?

 

어떤 유혹이 오더라도 깊이 그때그때마다 반성하면서 살도록 해야 될 겁니다.

인간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것은 하느님과의 약속임을 깊이 명심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8. 09. 28 (연중 제 26주일 가르침)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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