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 혼자서 말하는 것을 ‘독백’이라 한다. 듣는 사람이 있든 없든 혼자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독백에서 듣는 사람, 그 이야기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야기하는 사람의 심정만 중요하다. 자기 혼자(mono) 말한다(logue). 그래서 ‘독백(monologue, 獨白)’이다. 하지만 자기 혼자만 이야기하지 않고 듣는 사람이 있는 이야기, 말을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대화’라고 한다. 대화는 내가 상대에게 말하고, 상대는 내 말을 듣는다. 또 상대가 말하면 내가 듣는다. 말이 오고 간다. 서로(dia) 말한다(logue). 그래서 ‘대화(dialogue, 對話)’라고 일컫는다. 대화는 참 중요하다. 인간이 말을 하는 것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며, 듣는 이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과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 대화를 통해서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 친밀해지고 가까워진다. 대화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친해지기 위해서도 우리는 하느님과 ‘대화’를 자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숨을 쉬듯이, 우리가 공기로 호흡을 하듯이, 하느님과 마음을 나누고 서로 통하는 것이 기도이다. 이 기도가 공동체로 또 공적으로 거행되고 이루어지는 것이 전례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도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쪽에 더 가깝다. 대화가 그렇듯이, 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내 말을 먼저 하고 많이 하고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대화가 성립되는 지름길이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말을 먼저하고 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도록 듣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더 많은 말씀을 하시도록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모든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말씀 전례’를 먼저 갖는다. 기도드리며 무엇을 청하고 기원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것은 우리가 드릴 이야기의 내용을 하느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원하시는지, 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청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만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까? 이치는 간단하다. 말씀에 귀기울이는 자세를 갖추면 된다. 듣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힘이 되고 생명력을 갖게 되며, 대화가 된다.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히 교훈적인 말씀이 아니다. 구원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이다. 또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전해주시는 영성적 보화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전례 공동체는 하느님의 말씀을 최대의 존경심으로 경청해야 한다. 소리는 사람의 소리이지만 그 소리의 주인공은 하느님이시다. 들리는 말은 인간의 말이지만 말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한마디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서 구절은 그렇게 긴 편이 아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그 귀한 말씀을 상당히 놓치게 된다.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 한다. 물론 독서자도 하느님의 말씀을 공동체가 잘 들을 수 있도록 봉독해야 함은 당연하다. 1, 2독서 때는 앉아서 듣는다. 편안한 자세로 정신을 집중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복음 봉독 때 일어서는 것은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존경과 복종의 자세로 그 말씀을 경청하라는 의미이다. 분심이나 잡념에 기울어지거나 또는 딴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응답을 드릴 수 없다. 그러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신앙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늘 경청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생활 속에 실천하는 사람이다. 말씀을 잘 듣는 것은 하느님 자녀의 특징이며 기본 자세이다. 말씀을 잘 듣는다면, 진정으로 감사하고 찬미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그 말씀에 올바로 응답하고 생활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귀기울여 들어보자. [경향잡지, 2002년 2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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