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 사랑의 완전한 통교이신 하느님 우리 인간 생활 가운데는 합리적으로 따져서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일들이 주로 그렇다. 죽고 사는 생명의 문제도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는 일을 보더라도 자신이 동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왜 태어났느냐고 본인에게 묻는다면 자신은 답할 수가 없다. 왜 죽어야 하느냐고 묻는 질문도 같은 이치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느님에 관한 것은 인간의 지능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것을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라 부른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것들이 많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깨닫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은 모두 신비인 것이다. 하느님의 것, 하느님에 관한 것, 하느님의 일은 신비로운 것들이 많다. 하느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점도 신비에 속한다. 우리는 교리를 배울 때,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배웠다. 또 그렇게 깨달아 알고 있다. 세 분이신 하느님, 하지만 유일하신 하느님, 그 모습이 우리가 전해들은 우리 신앙의 하느님이시다. 셋이며 하나이시다.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교회는 지금까지 주님 부활의 기쁜 시기를 지냈다. 그 기쁨이 워낙 커서 50일 동안 경축하며 거행해 왔다. 여덟째 주일인 성령 강림 대축일, 곧 예수 부활 대축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부활시기를 마감하였다. 그리고 연중시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곧 이어지는 주일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다. 왜 부활시기에 이어서 삼위일체를 기념하는가? 그것은 부활의 신비가 우리 신앙의 신비에서 중심이요 핵심이라면, 이제부터 부활의 신앙을 사는 우리 삶이 ‘삼위이신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함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곧 삼위이신 하느님은 공동체의 하느님이시며, 완전한 사랑의 통교를 이루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교회가 삼위일체 대축일로 선포한 것은, 하느님께서 구세사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성령 강림으로 완수하셨는데, 당신의 모습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로 인류에게 드러내 주셨기 때문에, 그 하느님께 흠숭드리고 찬미드리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 삼위일체 대축일 거행을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이 축일이 전례 문헌에 나타난 것은 중세 때부터이다. 8세기경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첫 주일 또는 마지막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장엄하게 기념한 흔적이 보이며, 그 이후 로마에서는 삼위이신 하느님께 청원을 올리는 미사와 기도로 발전하였다. 10세기경의 미사 전례서 같은 서방 전례 문헌에, 일찍부터 삼위일체 대축일을 교회가 경축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10세기에 이르러 현재의 벨기에인 리에즈의 스테파노 주교에 의해 완전한 형태의 기도문과 전례 양식, 성무일도 등이 정착하여 거행되었다. 이후 시토회의 클뤼니 수도회 등을 통해서 성령 강림 팔일 축제(대축일에서 다음 주일까지 8일 간 지속되는 축제) 기간 내에 지역에 따라 자유롭게 거행되었다. 보편교회의 공식 축일이 된 것은 1334년으로,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로 선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삼위일체 대축일에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는가? 이날 전례의 핵심 내용은 미사의 감사송에 있다. 이 감사송은 7세기 전례서에 기원을 가진 것으로, “성부는 성자와 성령과 함께 한 하느님이시고 한 주님이시며 위격(Persona, 역할과 실체)으로서는 삼위이시나 본체(Natura, 본성)로서는 한 분이시다.” 라는 교회의 신학을 요약하여 고백하고 있다. 기도문과 전례의 독서 말씀들도 삼위를 중심으로 선포된다. 주로 자비로우시고 한 분이신 하느님(제1독서), 삼위께서 누리시는 친교와 특히 성령에 대해서(제2독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통한 세상의 구원에 관한 말씀(복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삼위의 관계는 사랑의 완전한 통교를 이루는 관계임을 말해준다.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완전한 통교를 이루는 사랑 자체이시며, 그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다. 삼위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배와 축제 거행은, 그래서 우리 일상의 모든 기도 안에 들어있다. 미사와 기도문에는 물론이고 식사 전후에 이르기까지 삼위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하느님께서는 삼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인류를 구원으로 부르신다. 우리는 오늘 삼위로 자신을 드러내주신 하느님을 기억하며,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 넘치는 사랑과 자비를 청원하도록 하자. [경향잡지, 2001년 6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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