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시기 - 임을 그리는 설레는 마음 우리는 일상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일을 위해서 또는 어떤 기쁨을 누리려고 사람을 기다리고 만난다. 또 만나고자 채비를 차리고 때를 맞추어 약속 장소로 나간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人)’+‘간(間)’이라 했던가? 그 가운데서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은 그리워한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것을 그리움이라 한다. 임을 기다리는 그리움, 임을 만날 것을 희망하는 기다림, 그것은 특히 우리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며 생활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임을 만날 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기대와 설렘이 있다. 그것을 망덕(望德)이라 한다. 신망애 삼덕은 하느님을 향한 세 가지 덕이다. 믿음, 희망, 사랑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희망의 덕, 곧 망덕은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의 약속을 기대하고, 주님을 뵙게 될 희망에 설레는 마음이다. 믿는 이들은 주님을 기다리고 뵙게 될 희망을 늘 갖는다. 특히 교회에서는 일년의 전례주년 안에서 대림시기에 주님께 대한 희망과 기다림의 자세를 강조한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다는 사실, 우리를 만나러 오시고, 우리가 그분을 뵙게 된다는 사실에 기대를 갖고 마음이 설렌다. 그것이 대림절이다. 그렇다면 대림시기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주님을 기다려야 할까? 일찍이 교회는 4-5세기부터 고행하면서 주님 성탄과 공현을 준비한 흔적들이 있다. 본격적으로는 6세기부터 지내왔다. 3주간의 준비 기간이 있었는데,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절처럼, 성탄 때 베푸는 세례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불란서 지방에서 그렇게 지내왔다. 6세기에 로마에서는 처음부터 대림절을 전례로 지내왔다. 처음에는 6주간이었다가 4주간으로 고정되었다. 대림시기는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때로 이해되었다가, 그 의미가 확대되어 세상 끝날에 주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의미도 띠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는 일찍부터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하여 여러 선지자들과 성인들을 통하여 그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세 사람이 있다. 이사야 예언자와 세례자 요한 그리고 성모 마리아이다. 대림시기에 등장하는 분들이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전적으로 순종하신 자세를 보인 분이다. 또 이때 성모님의 축일(12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도 끼어있다. 이날은 주님의 성탄과 관련이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약속의 말씀, 곧 주님께서 오실 것을 선포하고 예언하였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독서에서 가장 많이 읽는다. 주님의 성탄이 더욱 가까워지면, 세례자 요한이 복음에 등장한다. 그는 주님의 오심을 선포하였으며, “그분의 길을 닦고 고르게 하여라.”는 말씀을 실천으로 보이신 분이다. 산은 깎이고 골짜기는 메워지는 정의를 실천하기를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이렇게 대림시기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 그냥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이 시기는 성모 마리아, 이사야 예언자, 세례자 요한처럼 기다리도록 우리를 일깨워주신다. 성모님처럼 선택된 이의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세, 이사야 예언자처럼 주님의 명을 받아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세, 세례자 요한처럼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르쳐준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주님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이었다. 기대가 가득하였다. 구세주를 맞이하려고 꾸준하게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였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기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기쁜 마음으로 전하였다. 또 주님을 잘 맞아들이는 몸가짐으로 그분의 정의를 실천하고자 애썼다. 우리도 이번 대림시기를 이분들처럼 준비해 보자. 주님께 대한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자. 몸을 단정하게 갖추고, 주님이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고, 정의를 실천하도록 하자. 지나치게 들뜬 몸과 마음, 기쁜 소식에 기뻐하지 않는 것, 올바른 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자세라면, 주님께서 오셔도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주님은 미천하고 고요하고 은밀하고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오시기 때문이다. * 나기정 다니엘 - 신부,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2000년 11월호, 나기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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