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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음 이들아'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14 조회수396 추천수4 반대(0) 신고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마태 25, 31-46)

 -유 광수신부-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 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대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대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이방인이었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최후심판 때이다.

 

오늘 복음에서 몇 가지를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한테 선물로 받은 것이다. 즉 나의 생명, 시간, 능력, 이웃 등은 모두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뿐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인간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1,28)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잘 관리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사명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창조하시어 인간에게 맡긴 모든 것을 잘 관리하여 번성하게 만드는 것이 복을 받는 일이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다. 창조주는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하느님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느님과 인간과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지 내가 아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가장 작은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뿐이다.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것이 하느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것이고 그 명령을 따라 내가 받은 것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이 오늘 나의 사명이요 복을 받는 일이다.

 

둘째, 하느님이 최후 심판을 내리실 때 사용한 동사는 현재이지만 심판을 내리시는 내용은 과거 동사를 사용하셨다. 즉 심판하실 때에는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는 현재 동사이고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라고 그가 한 행동은 모두 과거 동사를 사용하셨다. 그러니까 최후심판은 최후 심판 때에 가서  즉석으로 이루워 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그가 살았던 행적을 가지고 심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후 심판은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통해서 이루워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매 순간은 곧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성실하게 살아야 할 시간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 오늘이다. 하느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미래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시는 것이다. 내가 받아야할 하느님의 축복은 미래에 받을 것이 아니라 오늘 받아야 한다. 하느님은 오늘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마지막 날에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마지막 날에는 당신이 나에게 주셨던 그 복을 거두워 드리실 뿐이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 가서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은 하느님께 달린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달린 것이다. 오늘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을 잘 받아들여서 축복 받는 삶을 살았으면 마지막 날에 가서 축복을 받을 것이오, 오늘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삶이 아니라 저주받는 삶을 살면 마지막 날에 가서 저주받게 될 것이다.

 

셋째,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삶은 어떤 삶이고 저주받은 사람은 어떤 삶인가? 하느님이 축복으로 나에게 주신 삶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삶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오늘 내가 복을 받는 삶이란 가장 작은 이들이 굶주려 있을 때에 먹을 것을 주는 것이요,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이요,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이요,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요, 감옥에 갇혀있는 이들을 찾아주는 것이다.
저주 받는 삶은 어떤 삶인가? 오늘 가장 작은 형제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것이요,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는 것이요, 이방인을 따듯이 맞아들이지 않는 것이요,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지 않는 것이요, 병든 이나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 것이다. 즉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이 저주 받은 삶이요,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이 복을 받는 삶이다.

 

넷째, 내가 받은 것을 나누어 주어야할 "가장 작은 이들"이란 누구인가?  가장 작은 이들이란 내가 하느님 한테 받은 축복을 나누어 줄 대상이다. 그 대상이 부자도 아니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도 아니요, 지식인도 아니다. 가장 작은 이란 내가 언제나 만날 수 있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 어떤 댓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아무런 조건없이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나누어 주는 것을 겨우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가난한 사람이다. .
"가장 작은 이들"란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 나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다. 지금 현재 나의 상황이 어떻든 나는 "가장 작은 이들"보다는 나은 형편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위에 그 어떤 사람도 나의 것을 나누어 주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든 이들이 다 내가 나누어 주어야할 대상들이다.

 

세네카는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고 있다."고 하였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요 그것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영원히 번성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축복해주시고 그 축복으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이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이 바로 자살하는 사람이다.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심는 것을 거둔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는 법이다.

 

아버지께 축복을 받는 사람은 "세상 창조 때부터 나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요, 저주 받는 사람은  "나에게서 더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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