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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일 (요한 11,1-45).정월기 프란치스코 서울창5동주임신부님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10 조회수36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1 4 10일 일요일 사순 제5주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 11,1-45)

 
 
나자로야 나오너라
 
일시 : 2011. 4. 10 (사순 제5주일) 교중미사강론 : 정월기 프란치스코 서울창5동주임신부님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은 죽음처럼 암담한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이 해방은 하느님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행하실 더 중요하고 보편적인 해방의 징표이다(1독서. 에제키엘  37,12ㄷ-14). 비록 우리가 죄 때문에 죽을지라도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의 의로움 때문에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생명을 누릴 수 있다(2독서). 라자로의 소생은 주님께서 생명의 주재자이심을 드러낸다. 주님께서 라자로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일으키신 것은 우리도 그분의 능력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복음 .요한 11,1-45).

☆☆☆

 

 

인간의 눈물을 아시는 예수님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우셨을까? 루카19,41에 보면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 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 구나. 멸망할 도시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 한탄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영생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5,7)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게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는 내 마음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하시고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을 통해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시며 눈물을 흘리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생명이셨기 때문에 우실 수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살아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의 고통에 가슴으로 함께하셨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실 라자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릴 수 있는 분이 죽음을 보고 슬퍼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눈물을 아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큰 슬픔을 아십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에 깊이 연민하십니다.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는 바로 그곳에 살아있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죽은자의 가슴은 공명을 모릅니다. 깊이 공감할 줄을 모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 눈에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마리아뿐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마리아와 마르타 다른 문상객들이 슬프게 운 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깊지 못한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디에 있든 그들의 슬픔은 순수한 것이었고, 예수님의 가슴도 그 슬픔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이렇게 보면 눈물도 큰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참된 행복의 선언에서도 보면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깊은 참회의 눈물로 아버지 하느님께 간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주 우십시오. 눈물을 흘리면 복이 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는 곳에 축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니 가끔은 대성통곡하십시오. 아무 곳에서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성체 앞에서 우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줄 것입니다. 묵시21,4에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와 나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면서 눈물을 흘리십시오. 인간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곤경에서 구해 주실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인색해진 눈물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영혼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보면 울지 못한다는 것은 병입니다. 영혼이 마를 대로 말라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우시기 바랍니다. 나이가 얼마인데, 남자자 이런 일로 울다니하지 말고 실컷 우십시오! 울 때는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에도 좋습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흘러나오는 눈물에는 카테콜아민이라는 호로몬이 많이 붙어 있는데 이 호로몬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 몸에 대량으로 생긴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 만성위염 같은 소화기 질환이 생기고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아져 심근 경색이나 동맥경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 나쁜 호르몬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매개체가 눈물이랍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바로 면역세포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웃음이 파도라면 울음은 해일이 이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주님의 마음에 공감하여 우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래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집안 식구들이 울지 못하게 하셨어요……그래서 눈물을 흘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당신은 남몰래 실컷 우시더라고요.그래서 지금껏 사시는 것 같애요.

 

어떤 연구가들은 눈물에 존재하는 항생물질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는데 항균 효과가 그리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파를 까놓고 눈이 매워 흐르는 눈물보다는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눈물이 진짜입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살아나거라. 하고 말씀하시지 않고 라자로야 나오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분이 무덤 앞에 섰을 때 이미 라자로는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라자로는 죽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믿고 사는 이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영생의 새삶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죽음에 공감하시기 때문에 인간적인 처지를 활용하여 통쾌한 승리를 보여주십니다. 라자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자. 입니다. 무력하다.입니다. 우리는 무력하기에 주님의 도움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덤입구에만 가도 썩은 냄새가 나는데 그 무덤을 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라자로야 나오너라!는 말씀에 따라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나오너라! (전지전능하신분이십니다.)

 

나오너라! 무덤에서 나오너라!

 무슨 얘기냐 하면 진짜 죽는 것은 내가 무덤에 갇히는 것입니다. 선입견, 똥 고집,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마음, 시기질투, 분노, 증오, 집착, 소유,지배, 명예욕 교만함 등등. 이런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무덤에서 나오너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바로 그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돌을 치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웠습니다. 마르타는 냄새 난다고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예수님은 명하셨고 그대로 했더니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였는데 그것을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풀어주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내 스스로를 옭아 매지도 말 것이며, 남을 내 잣대로 재어 판단하고 단죄하여 무덤에 가두어 옭아 매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용서하고 화해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나를 위해 울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리도 그분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는 한 주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마음, 묶인 것을 풀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어머니, 매괴 성모님, 수난 받으신 성모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움과 증오, 분노의 총을 맞고도 흔들림 없이 성당중앙에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천상을 바라보시며 모든 것을 품으신 어머니처럼 우리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모두를 감싸 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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