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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은 어디에?" - 4.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17 조회수314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4.17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사50,4-7 필리2,6-11 마태26,14-27,66

 

 

 

 

 

"하느님은 어디에?"

 

 

 

문득 오늘 수난 복음 묵상 중

하느님은 어디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수난 현장에서 하느님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의 아드님이 이렇게 곤경 중에 있는데

하느님은 개입하시지 않고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하는 생각입니다.

말 그대로 믿음의 시련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상 주변에는 온통 주님을 빈정대는 이들의 목소리뿐입니다.

깨달음처럼 스친 생각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여기 수난 현장에 계시다.’

 

그렇습니다.

다른 곳 어디도 아닌

지금 여기 침묵 중에

온통 눈이 되어 현장 모두를 보시고,

온통 귀가 되어 들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시며 들으십니다.

우리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곤경 중에 있을 때 절대 하느님을 의심하거나 당황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이런 하느님을 깨닫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수난 현장의 예수님의 처지가 참 고독하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참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계신 하느님께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 때문입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바로 인간의 본질 같은 것이요

지금 여기 계신 하느님을 찾아 만나라는 표지입니다.

오늘 수난 현장에 나타나는 온갖 인간 군상들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시 환호하던 군중들은 폭도로 변하고,

자신을 팔아넘긴 제자 유다와 세 차례나 자신을 부인한 제자 베드로,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깨어 기도에 몰입하던 예수님과 달리

잠들어 있던 제자들 온통 실망스런 모습들입니다.

제자리에 있는 제 정신의 사람들을 찾아보기 참 힘듭니다.

과연 이 수난 현장에 내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이게 약한 우리 인간의 실상입니다.

여러 제자들이 함께 했어도

결국 예수님은 참 외롭고 고독한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섭섭함이나 원망의 감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연민 가득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이 모든 비밀은 바로 기도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 둔 다음 예수님의 기도가 참 절실하여 심금을 울립니다.

아버지와 얼마나 친밀한 신뢰의 관계인지 깨닫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잠들어 있던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신 후

예수님은 다시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우선적 관심사는

오로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 아버지께 순종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상의 기도입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참으로 아버지께 바치는 절실한 신뢰 가득한 기도입니다.

신뢰 없으면 도저히 이런 기도를 바칠 수 없습니다.

 

 

마침내 침묵 중에 관망하며 기다리던 하느님의 개입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적절한 때에 개입하십니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지고

땅의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진 사건들은

바로 하느님이 개입하셨다는 신호요 예수님 부활의 전조입니다.

우리 모두 백인대장과 함께 주님을 고백하며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합시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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