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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과 성체로 오시는 분!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21 조회수483 추천수3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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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한 주일동안 건강하게 편안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지난주 4일 동안 아침부터 가정방문을 열심히 다니면서 신자들에게 축복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느 보좌신부님이 새 사제가 되어 본당에 부임하여 난생처음 신부로서 첫 번째 강론을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 신부님들이 처음 강론대에 서면 떨릴까요? 안 떨릴까요?

저는 은경축이 다 되었지만 지금도 떨립니다.

저 떨리고 있습니까?

무지하게 떨고 있죠?  안 떱니까??

그 보좌신부님은 아무튼 사제되고 나서 처음으로 강론을 열심히 준비하긴 했는데 무척 떨리는 거였습니다.

그날 주례는 저처럼 주임신부가 했고 보좌신부님은 강론만 하러 나오는 그런 식의 강론 이었습니다.

이 주임신부님이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보좌신부님을 보니 제의실에서 발발발발..... 떠는 것이었습니다.

“자네 무척 긴장이 되나 보구만?”

“예 신부님 이렇게 떨려서 큰일 났어요... 이따 강론하다 이렇게 졸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좋은 수가 있어. 내가 옛날에 해보던 방법인데 자네 강론하러 나오기 전에 미사주 있잖아....이 미사주 한 컵만 먹고나와~~ 그럼 좀 담대해져가지고 강론 잘할 수 있을 거야.”

주임신부님이 입장하고 난 다음에 보좌신부님이 주임신부님 말대로 미사주 한 컵을 벌컥벌컥 먹었더니~~

아, 이게이게 약발을 덜 받았는지~~ 더 떨려! 

그래서 먹다보니까 미사주 한 병을 다 먹었네???

한 병을 다 먹고 나니까 그때 이제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뭐 이젠 세상이 다 내꺼 같고 너무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아~~ 그래서 알렐루야가 끝나자 보좌신부가 복음을 읽으러 당당하게 들어왔죠?

복음을 선포하고 강론까지~~

중간에 박수를 세 번이나 받았어~~

어찌나 노숙하게 하는지~~

그날 점심때 보좌신부가 주임신부님 눈치를 살피면서

“신부님, 저 오늘 어땠어요?”

“야!  잘했어~~ 어떻게 그렇게 노숙하게 잘 하나?”

“근데 저 신부님 혹시 제가 고칠 거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제가 참고해서 조금 더 다음부터 더 잘하겠습니다.”

“글쎄 뭐 다른 거는 뭐 워낙 잘해서 얘기할거 없고... 글쎄 굳이 고친대면은 두 가지인데......’


여러분, 강론 다 하고 난 다음에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뭐라고 그랬을 거 같아요? 

예? 

다 읽고 난 다음에 ‘부라보~~’그랬답니다.^^

 


사람은 뭐든지 취해야 살죠?

근데 술에 늘 취해 사는 사람은 술주정꾼이 되요!

돈에 취해 사는 사람은 ‘수전노’라고 하는 이름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돈에 취해 살아도 안 되고~~

술에 취해 살아도 안 되고~~

뭐에 취해 살아야 되겠습니까?

성령에 취해 살아야 되요!

그렇죠? 성령에 취해 살면 놀라운 힘이 생겨요.

성령에 취해 살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어요.


오늘 복음 4장 21절 말씀을 내가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읽어드리면 맨 마지막이 뭐로 끝났느냐?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는 말로 끝납니다. 그렇죠?


오늘 이 미사 중에 사제의 입술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치유가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이 미사를 통해서~~

성체를 통해서~~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축복과 은총의 엄청난 사건이 오늘 각자 각자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제일 먼저 하신일이 무엇 이였느냐?

제자를 끌어 모았던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제일 먼저 하신일은 말씀 선포였습니다.

무슨 선포요?

<말씀선포> 


다시 말하면 세례 받은 자의 첫 번째 영적임무는 말씀선포입니다.

 

사제의 가장 큰 의무면서 권리는 뭐냐?

바로 말씀선포!

사제는 강론준비를 철저히 해야 됩니다.


저는 이십여 년 가깝게 피정지도를 합니다.

내 다른 동료신부님들 후배신부님들이 저를 보면

“신부님은 참 좋겠다. 강론을 너무너무 쉽게 하고 재밌게 하니까 너무너무 좋겠다.”

저는 그러지요.

“주일 강론은 월요일부터 일주일동안 준비해야합니다. 평일강론은 바로 그 전날부터 하루 종일 내내 묵상하고 준비해야 됩니다.”


준비된 강론은 우리를 성체께로 이끌어갑니다.

사제의 준비된 강론은 신자들이 마음을 내면으로부터 회개시키고 내적변화를 줍니다.

그러나 준비 안 된 강론은 자기가 읽으면서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읽습니다.

누구보다 신자들은 ‘우리 신부님 묵상하면서 강론을 철저하게 준비하는구나. 안하는구나!’

하는 거를 제일 먼저 압니다.


신학교 다닐 때 신학교에서 그런 얘기가 이렇게 전해 내려옵니다. 주일날 사제가 돼서 강론할 때 십분 이상 하면 그건 마귀소리다. 그리고 강론은 목사만 잘하면 되지 신부는 강론 잘할 필요 없고 미사만 잘 드려주면 된다!

저는 그 말에 그 어린 신학생 이였지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강론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입니다.


오분 강론을 해도 지겨운 강론이 있고 삼십분 강론을 해도 5분보다 짧게 느껴지는 강론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찌 목사만 설교를 잘 해야 됩니까?

그것을 강론 준비 안하는 사제들의 변명일겁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생 때부터 늘 기도하면서

“예수님! 제가 사제가 되면 말씀의 은사를 주시고 그리고 이 세상 어느 사제보다도 강하게 예수님말씀 선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준비된 강론과 성체가 있을 때 개신교 목사의 설교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개신교는 말씀하나만 가지고 반 쪼가리 가지고 온 쪼가리 천주교를 이기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나 사제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말씀을 소홀히 할 때가 있지요.

물론 사제들의 강론은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맑고 깨끗하지만 어떨 때는 강한 힘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목사들은 처자식을 거느리다보니까 많은 체험을 합니다. 속 썩이는 자식도 있고 또 바가지 긁는 마누라도 있다 보니까 그것이 일반신자들과 교류가 됩니다. 체험의 영역이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사제의 강론이 힘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은 체험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성령께 도움을 청하고 성령에 대한 뜨거움이 있느냐!

성령의 체험이 있을 때 사제는 독신으로 살아도 세상 꺼 성령께서 다 알려주십니다.


따라서 사제의 첫 번째 임무는 오늘 주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첫 번째 했던 말씀선포입니다.

이 의무는 사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받은 모든 크리스천 백성 모두에게도 이 말씀선포의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

세례 받을 때 우리 평신도들도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의무를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하는 <말씀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온다고 해서 모두 말씀은 아닐 겁니다.

말과 말씀은 분명히 다릅니다.

말씀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그 차이는 말씀은 첫 번째로 영적변화가 와야 됩니다.

말씀에 내게로 오면 반드시 내가 변화가 돼야 됩니다.

이 영적변화는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같이 변화가 됩니다.

피정을 시키면서 많은 경우는 제 자신이 피정을 합니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지키려고 기를 쓰고 애를 씁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훈화를 하면은 부모도 그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듯이 말씀은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을 같이 변화를 시켜줍니다.

 

말씀의 두 번째 열매는 치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에 나병환자를 낫게 하시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의 병을 고쳐주시고/ 말씀 한 마디에 앉은뱅이를 그 자리에서 일으켜주셨습니다.

말씀은 곧 치유입니다.

그래서 사제가 짧은 주일 강론이나 아니면 긴 하루 피정을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시간에 관계없이 단 오 분 레지오 훈화를 들으면서도 치유가 될 수 있고 사제와 단 몇 마디 말을 나누면서도 사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그냥 말이 아니라 말씀일 때는 손만 잡아도 사제를 통해서 치유를 받습니다.


세 번째 말씀의 열매는 삶을 변화시킵니다.

인간중심의 삶에서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를 시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삶이 변하고 나면 이 세상이 변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변하면 뵈기 싫었던 남편도 이뻐집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변화가 되면 속 쎅이는 새끼도 끌어안으면서 같이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은 나를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주를 변화시키고/ 내 인생관을 바뀌게 합니다.


이런 말씀의 열매를 맺으려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말이 아니라 말씀이 돼서

영적 변화를 가져오고~~

치유를 가져오고~~

삶을 변화시키려면~~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씀이 아니라 그냥 지껄이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도 오늘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나서야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셨다 하고 나옵니다.

오랜 세월동안을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로 살아가면서도 저는 늘 조심스럽고 두렵습니다.

 ‘내가 혹시 내말을 하지는 않을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내 사상을 전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 때문에 늘 조심스럽습니다.


피정을 나가보면 수백 명 내지 교구행사인 경우 수천 명 신자들이 모여 대피정을 합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이도 다르고 학력도 다르고 살아온 모습도 다릅니다.

지금 피정하러온 이 자리에는 이혼하기 직전에 친구가 억지로 끌어다 그 자리에 앉혀놓은 사람도 있을 것이요!

삶의 괴로움 때문에 죽으려고 동맥을 몇 번씩이나 끊었던 사람도 앉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체험을, 다양한 삶을 가진 그 사람들 앞에서 어줍잖은 지식을 전하면 절대 변화가 오지를 않습니다.


학교선생님은 그 선생님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목적이 비슷하기 때문에 지식전달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제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씀은 사람을 그런 쪽으로 변화시켜야 되고 치유시켜야 되고 삶을 변화시켜줘야 되기 때문에 자기의 상식을 가지고 떠들어서는 안 될 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말장난이요... 지식전달이지...

영적변화는 절대 일으키지 못합니다.

저는 늘 제의를 입으면서 

‘주님! 오늘 주님 말씀 전하러 나갑니다. 오늘 주님의 몸과 피를 만들러 나갑니다. 성령이시여! 오늘 복음을 전할 때, 말씀을 전할 때 내 입술을 가지소서!

저는 입만 빌려드리겠나이다!’


여러분들도 전교할 때, 그 기도를 가지고 외인들을 만나십시오.

‘성령이시여!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도 예수님을 알려드려야 됩니다. 저는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 입술을 가지셔서 저분을 변화시켜주시고 하느님의 자식으로 만들어주십시오.’

믿고 기도할 때는 상상도 못할 말이 내 입을 통해서 엄청난 힘을 갖고 그 사람에게 다가섭니다.


두 번째로 말씀을 통해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성서를 가까이 하셔야합니다.

‘성서를 읽어보지 않고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자는 새빨간 거짓말 장이이다.’

예레니모성인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 세상을 떠나면 죽을 때, 관속에 가져가는 것이 세 가지가 있죠?

자! 뭘 꺼 같애요?

천주교 신자들이 죽으면 관속에 넣어주는 게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손에다가는 묵주를 감아줍니다.

그리고 가슴에다가는 십자가 고상을 이렇게 쥐어줍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어요. 한평생 내 손때가 묻은 성서 책을 넣어줍니다.


근데 우리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묵주와 고상은 넣고 가는데 성경이 있어야 넣지....

허구한 날 매일미사 책 만들고 다니니~~

아마 천주교신자들 매일미사 책 찢어서 온 몸을 도배하고 가면 좋을 거예요!^^

타본당 신자들이 이곳에 와서 미사를 드리면서 많은 은혜를 받으십니다.


그래서 어느 신자분들은 그러세요!

“신부님, 여기오니까 교우들이 성서 들고 오는 거, 그리고 신부님과 같이 독서를 같이하고 복음을 같이 읽는 거를 보기만 해도 은혜를 받는 거 같습니다. 저도 제 성당에서 다음 주부터 성서 꼭 갖고 다녀야겠습니다.”

 


매일미사 책 때문에 우리 신자들이 많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매일미사책 삼 년 후에 또 보는거 아니지요?

매일미사책은 그달 보면 버려야 됩니다.

성서를 읽고 은혜 받았다는 사람은 봤어도 매일미사책 읽고 은혜 받았다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천주교에 냉담자가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성서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겁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늘 옆에다 성서를 둡니다. 그리고 읽고 쓰고 외웁니다.

그래서 국민학교도 못나온 할머니가 문학박사를 끌어다가 개신교에 입교를 시킵니다.

왜? 성서를 외우고 있기 때문에 호떡 굽는 할머니도 맨질맨질한 손으로 틈만 나면 쪼그리고 앉아서 침 발라 가면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하면서 읽고 외웁니다.

그러다 전교할 사람이 나타나면

 “아이구 새댁 어디 살어?”

“그 아파트 사는데요.”

“그래 어디 뭐 나가는데 있쑤?”

“저 무종교인데요.”

“잘 됐어. 내가 이번 수요일 아파트 몇 동 어데 찾아갈게.”

“왜 그러세요?”

“아이구 나만 한 번 따라와 봐. 우리 목사님 아주 말씀이 은혜로워.” 하면서 끌고 나간단 말이예요.


그런데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성서를 외워도 여기 교우들 외우고 있는 성서가 몇 개나 됩니까?

사실 모릅니다.

그러다보니까 여호와증인들이 오면 꼼짝없이 당하지요!

그래 여호와증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문패가 뭐냐?
천주교교우의집 문패를 제일 좋아하고 사랑한대요.

일단 천주교교우의 집에 들어가면 성서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까~~

여호와증인들은 둘 씩 몰려다니죠?

그 사람들이 봉고차에서 내리기까지는 육개월 동안 철저한 훈련을 받습니다. 육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감독 여섯 사람 앞에서 시험을 치러서 여섯 사람 앞에서 만점을 맞아야만 둘 씩 마을에다 풀어 놉니다. 성서를 달달달 욉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성서모르는 천주교 신자들이 넘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통계가 현재 여호와 증인의 60프로가 천주교신자, 천주교 세례 받았던 사람이라는 것이 거기 있다가 나온 아주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이 얘기한 거였지요.

여호와증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천주교 문패라고 하는 이 수치스럽고 챙피함에서 벗어나야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쌍날칼처럼 우리의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그 성서를 가까이 해야 됩니다.

열 번 듣는 것보다는 한번 읽는 것이 더 은혜롭고/ 열 번 읽는 것보다는 한번 쓰는 것이 더 은혜롭다!

그래서 가장 은혜로운 것이 뭐래는 겁니까?

쓰는 겁니다. 쓰십시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육 년 전부터 성서필사운동을 합니다.

성서를 써가지고 오시면 축복장을 드리고 반지를 해드립니다.

육년 동안 많은 분들이 여기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 피정을 가도 축복장과 반지를 갖고 있는 분들이 두셋씩은 됩니다.

일년에 반지 값만 한 오천만원 정도는 나갑니다.

이제껏 반지 값만 한 이억이 나갔습니다. 열심히 피정해서 받은 강사료, 테이프 팔아서 반지 값으로 다 댑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지 받아가면서

“신부님, 이거 반지 값에 보태십시오.”

그런 사람 내가 알기로 다섯 사람 이내~~

“신부님 이거 신부님 돈도 없으신데 반지....”

“쓰기만 하시우. 별걱정을 다하네. 내 기르는 개라도 팔아서 반지 해드릴 테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써가지고 오시오.”

쓰다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쓰십시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를 땝니다.


이제까지 써가지고 오신 분 중에 제일 고령자가 몇 살이라고 그랬죠? 백 살 할머니가 최고령자였습니다.

육개월 동안 신약성서를 써가지고 왔는데, 진천에 있을 때 양쪽에 부축을 받아가며 써가지고 나오셨습니다.

당신이 걷지를 못하니까....그래도 앉아서 썼습니다. 또 뒤에다가 몇 자를 적으셨어요.

 ‘백 살을 사는 동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내손으로 쓰게 하신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저는 이제 원이 없나이다!’

그 할머니는 그거 쓰고 육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백 살 된 할머니가 쓰는 판인데 육십, 칠십이 됐다고 해서

 ‘아이구 뭐 이 늙은이가 성서를 써?’

아닙니다. 쓰십시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영적변화와

치유를 받고 삶이 변화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은

첫째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되고

두 번째 성서를 가까이 해야 됩니다.


성서를 가까이 하라는 얘기는 성서를 끌어안고 살라는 얘기는 읽든지 듣든지 가장 중요한 필사를 하라는 그 얘깁니다.

그렇게 훈련을 받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뭐라구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훈련받고 무장이 된 바로 그 교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말씀이 튀어나옵니다.


준비하고 살아가는 사제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지식전달이 아니라 인간을 근원적으로 변화시켜서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말씀이 나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늘도 말씀과 성체를 주십니다.

이 세상에 이렇게 복된 자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말씀으로 준비하고 성체로 양을 지키는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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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형제여 기뻐하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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