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길 진리 생명(요한 14,1-12 )-*반영억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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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5-22 | 조회수39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
2011년 5월 22일 부활 제5주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4,1-12)
말씀의 초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공동체 안에 불평등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열두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의 봉사에 전념하고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명을 뽑아 식탁 봉사자의 직무를 맡긴다(제1독서). 주님께서는 모퉁이의 머릿돌이시다. 머릿돌을 중심으로 신자들은 살아 있는 돌이 되어 거룩한 영적 성전을 이룬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우리 삶의 목적이신 그분 안에서만이 우리는 삶의 탄식도 허무함도 괴로움도 이겨 낼 수 있다(복음).
오늘의 묵상 올바르게 살고 싶은 것은 인류의 염원입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이 나타나 진리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엉뚱한 길이 더 많았습니다. 역사에는 가짜 이야기가 수두룩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님의 발언은 이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생명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도 알려주시고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 주님을 차지하는 은혜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가 34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를 부르겠습니다. 진정, 주님은 내가 걸어가는 삶의 길입니까? 하느님 아버지께 다다르는 천상복락의 방법을 예수님 안에서 찾는가? 생각해 볼일입니다. 주님이 걸으신 길, 십자가의 길, 그 희생의 길이 남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니라 바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던 예수님,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길이 나의 길임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고 하십니다. 아버지와의 만남을 이루는 방법은 예수님을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개자이십니다. 주님은 진리 같은 분, 진리와 비슷한 분이 아니라 진리 자체 이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고(요한17,17)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요한1,14)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도 진리입니다. 믿습니까? 예.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진리라고 하면서 왜 따르지 않아요? 아마도 지금 당장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른 것이 더 매력적이고 마음을 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거짓이라면 그것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는 영원합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진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 변할 것 같으면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깨우치는 진리, 사람이 알아야 하는 진리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알려주는 계시자로서 진리이십니다.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차지하면 곧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써 받아들여 실현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요한복음17,3절에서는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곧 그 삶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로서 생명이십니다. 사실 영생은 예수님과 함께 지금 여기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영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길을 다니다 보면 공사장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보통 푯말이 붙게 됩니다.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런데 흔히 보게 되는 이 푯말 밑에는 낙서가 씌여집니다. 뭐라고 쓸까요? “잘 알면서 왜 그래.” 불편을 주는 것 알면서 왜 그러냐고요? 인생여정에서 잘 알지만 생각처럼 안 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야말로 선한 결심을 해도 작심삼일이고 마음이 흔들비쭉입니다. 어떤 이는 성격의 문제로 인하여, 인간관계의 문제로 인하여 그리고 질병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술, 도박 등 잘못된 습관으로 인하여 고민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좋은 것 같은데 속을 보면 누구나 자기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을 한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로 좌절하고 낙담하며 슬퍼하고 힘에 겨워합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런 문제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며 우리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됩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면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은총이 됩니다. 자신의 지혜와 삶의 방법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주님을 믿고 믿는 대로 행하게 되면 “주님의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됩니다.”(요한 14,12)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여정은 모두 공사 중입니다. 잘 알지만 안 되는 것들을 고치는 중입니다. 아무쪼록 그 공사가 마무리 될 때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하나 되어 아버지 집에 거처할 수 있는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을 통하여 진리요, 생명을 만나길 기도하며 최민순 신부님의 ‘오늘 나의 길에서’라는 글로 마감합니다.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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