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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탐구 생활10-11: 미사는 언제 시작되는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07 조회수7,090 추천수0

전례 탐구 생활 (10) 미사는 ‘언제’ 시작되는가?

 

 

본당 주보나 홈페이지에는 매일 거행하는 미사의 일정이 공지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우리가 함께 모여 미사를 거행하기로 ‘약속한’ 시간이지, 미사 시작의 ‘절대 기준’이 되는 시간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한데 모이는 만큼 정해진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미사가 제대로 시작되기 위해서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매일 미사」의 앞부분에는 모든 미사 거행의 뼈대가 되는 ‘미사 통상문’이 실려 있는데(「미사 통상문」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출판되기도 합니다), 미사가 시작되는 부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나아간다. 교우들은 그동안 입당 노래를 한다.

 

새로울 것이 없는 설명입니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정 작업을 주도했던 이들은 문구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폈고, 쇄신된 전례의 근본 정신을 거기에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공의회 이전 미사 경본은 “사제가 준비를 마친 다음”(Sacerdos paratus)이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교우들이 모인 다음”(Populo congregato) 미사를 시작한다고 선언합니다.

 

거룩한 미사 거행은 두 사람 이상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마태 18,20), 우리가 그분의 현존 안에서 하느님 앞에 나와 있음을 인정하면서 시작됩니다. ‘교우들이 모이는 것’은 이 거룩한 현존에 이끌린 결과입니다. 미사 통상문의 첫 세 단어(라틴어로는 두 단어)는 교우들 스스로 모임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를 이끄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사의 참 집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제단인 당신의 백성을 불러 모으신다는 것을 드러냅니다(1베드 2,9 참조).

 

이 모임 안에서 우리는 죄인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그러므로 미사에 참여할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은총의 샘이신 하느님입니다. 미사는 바로 이 간단하지만 어마어마한 의미를 지닌 전제 위에서 출발합니다.

 

미사는 단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고 사제가 준비를 마쳤다고 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이 하느님 백성으로 모였을 때 시작합니다. 성찬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이므로(「전례 헌장」 10항), 백성은 지난 한 주간의 사건들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교회로 모입니다. 그러므로 「미사 통상문」을 시작하는 단어들은 “백성과 함께 거행하는 미사”의 “충만한 사목적 효과”를 추구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전례 헌장」 49항).

 

미사를 드리고자 우리가 모인다는 사실이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보니 자칫 이 모임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맺는 교류가 직접적인 대면보다 텔레비전, 인터넷, 휴대 전화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특히 익명화된 대도시 안에서, 미사의 이러한 가장 뚜렷한 특징을 재발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를 주례하는 사제와 거기에 참여하는 신자들 모두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민감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품 사제들과 전례 봉사자들은 기도로 합당하게 준비하고, 거행되는 거룩한 신비에 전념함으로써 주님의 식탁을 중심으로 모인 회중 전체에게 평화로운 묵상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신자 회중 역시 침묵과 기도를 통하여 성찬례 거행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사제를 도와 거룩한 신비를 품위 있게 거행하고 성찬 전례를 위한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2020년 3월 8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전례 탐구 생활 (11) 미사는 ‘언제’ 시작되는가?

 

 

미사는 “교우들이 모인 다음” 시작됩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약속된 시간에) 교우들이 (내적으로 하느님 백성으로) 모인 다음” 미사를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말입니다. 준비를 다 마친 다음 이제 미사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미사 통상문」의 서두에 다시 한번 주목합시다.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나아간다. 교우들은 그동안 입당 노래를 한다.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향하는 행렬을 시작합니다. 행렬을 이루는 이들의 의복과 그들의 손에 들린 도구들 – 높이 들린 십자가, 아름답게 장식된 복음집, 촛불 - 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향을 든 복사가 지나간 자리마다 향 냄새가 우리 코에 와 닿습니다. 교우들은 구경꾼이 아니고, 노래로 이 행렬에 참여합니다. 예식의 시작이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감각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평소에 미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 정적이고 지루하다 – 와는 사뭇 다릅니다. 전례 봉사자들의 움직임(행렬)과 교우들의 소리(노래)가 미사에서 맨 먼저 일어나는 사건이고, 이 둘은 하나를 이루어 우리를 미사의 신비로 안내합니다.

 

입당 행렬은 공원을 거니는 산책이나 대오를 정비하여 걸어가는 병사들의 행군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룩한 노래의 선율에 맞춰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입니다. 그리고 이 행렬은 우리 삶이 아직 나그넷길에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하느님 나라로 가는 거룩한 여정에 있고, 예수님께서는 미사 안에서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앞장서 이끄십니다.

 

전례 봉사자들이 제대로 향하는 움직임은 입당 행렬의 최종 완결일 뿐, 그 시작은 매 주일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신의 집과 침대를 떠나서 교회 혹은 하느님 백성이라고 불리게 될 그곳을 향해 길을 떠날 때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드는 동안 우리의 이 ‘행렬’은 한층 더 분명해지고, 우리가 하느님 백성으로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런 다음에라야 성품 사제가 모임을 주재하러 입당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교회 제도 안에서 잘 정돈된 하느님 백성의 행렬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나아가는 행렬의 이 장엄한 완결이 이루어지는 동안 신자들은 입당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식에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성찬례 거행을 외적으로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고통이나 근심이나 상처가 우리 곁에 늘 머물러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이 기쁨은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라는(시편 126,5) 희망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성금요일의 수난이 있기에 우리가 부활절 아침의 기쁨을 고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안에 새겨진 슬픔과 비탄과 고통은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하여 계신 하느님 현존의 보증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맺는 친교로 부르시며 어떠한 환난에서도 우리를 위로해 주심으로써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4 참조). 음악은 성체성사 안에서 발견한 기쁨을 우리만의 선물로 간직하지 말고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리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2020년 3월 15일 사순 제3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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