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의 모든 것] (7) 진정한 예배란 무엇인가
성체성사 통해 살아가는 자비와 성덕의 삶 - 제대는 신앙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미사 곧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다. 사진은 성 베드로 대성전의 중앙 제대 모습이다. [CNS 자료 사진] 나처음: 수도원 오는 길에 한 노숙자가 지하철역에서 마스크 없이 승차하려다 승객들과 실랑이하는 걸 봤어요. 그래서 언해와 제가 마스크 한 통을 사서 그에게 주고 왔어요. 라파엘 신부: 참 잘했구나.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골칫거리가 아닌 우리와 똑같이 존엄한 사람으로 여기는 태도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다. 자비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일 뿐 아니라 참된 하느님 자녀의 식별 기준이지.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가 ‘교회 생활의 토대’라고 강조하셨단다. 교황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자비가 정의의 완성이며 하느님의 진리를 가장 찬란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자비는 천국의 열쇠”라고 말씀하셨어요.(「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05항 참조) 나처음: 교황님 말씀대로라면 교회에 나갈 필요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날마다 사랑을 실천하면 되겠네요. 굳이 미사에 참여할 필요도 없이 말이요. 조언해: 미사는 미사고 선행은 선행이지 그걸 그렇게 엮냐! 라파엘 신부: 처음이가 이번엔 무리수를 둔 듯하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신분이나 처지에서든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에 이르도록 저마다 자기 길에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고 있지.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족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 환자들에게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의료인들 등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 길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랑과 희생으로 살아가고 있지. 이들은 우리 한가운데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 보여주는 거룩한 존재들이야. 하지만 인간은 늘 자기중심적이지. 지식이나 구체적인 경험을 지나치게 격상시키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승자박에 빠져 하느님을 조정하려고 하지. 너희도 잘 알지. 우리나라 한 목사가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고 대놓고 말한 것.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거야. 주님께서 세우시고,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결합돼 있으며, 성령께서 보호하시는 교회는 신앙 전체를 선포하며, 모든 구원의 방법들을 자신 안에서 충만히 지니면서 이를 관리하며 모든 이들을 하느님 나라로 이끌고 있지. 죄인들로 이루어진 죄 없는 교회, 생명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을 성화시키는 교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성령의 선물로 가득 채워진 교회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단다. 나처음: 그래도 나날의 삶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자비를 베풀고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본받고 진정한 예배가 아닐까 생각해요. 라파엘 신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우리의 행동 가운데 가장 고결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웃을 향한 자비의 활동’이라고 주저 없이 말씀하셨지.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예배 행위보다 중요하다고까지 강조했단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있단다. 우리가 왜 이러한 행동을 하느냐는 것이야. 그 이유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교회에 당신 자신을 주셨기 때문이야.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1요한 4,19) 이에 교회는 성찬례를 통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하고 경배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성체성사가 교회의 존재와 활동을 이루며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이라고 하는 거야. 따라서 모든 거룩함의 근원인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비와 성덕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십자가와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교 예배는 어떤 가치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지. 조언해: 원래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배웠어요. 라파엘 신부: 교회를 일컫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불러 모은다’는 뜻이란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주님께서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도록 불러 모은 사람들의 모임,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체로 살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한 마디로 ‘주님께 속한 모임’을 의미하지. 초대 교회 신자들은 스스로를 ‘교회’라고 불렀단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도 갖고 있단다. 주님께서 친히 당신을 돌에 비겨, 집 짓는 이들이 버린 돌이 바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마태 21,42)고 하셨지. 그 기초 위에 교회가 사도들을 통해 지어졌고, 그 기초 때문에 교회는 견고한 결속력을 지닌단다. 교회는 ‘하느님의 집’(1티모 3,15), ‘하느님의 신령한 거처’(에페 2,19-22),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장막’(묵시 21,3), ‘하늘의 예루살렘 성전’(묵시 19,7) 등 여러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단다. 나처음: 기도할 때 유다인들은 성전 지성소를 향하고, 무슬림은 메카 방향을 향한다는데 가톨릭 신자들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을 향하나요? 조언해: 넌 참 엉뚱하고 기발하구나! 저도 성당을 지을 때 전통적으로 서쪽에 정문을 두고 동쪽 끝에 제단을 설치한다고는 들었어요. 라파엘 신부: 주일이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거룩한 시간이라면 성당은 주님을 찬미하는 ‘거룩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 이 공간은 단순히 기도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이란다. 교회는 이 성당 안에서 거룩하신 삼위께 영광을 드리고 공적인 예배를 거행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자신의 기도를 올리고,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드린단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성당 동쪽에 제단을 설치하는 것은 살아있는 말씀이자 영원한 말씀이시며 참빛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함이야. 떠오르는 태양이 그리스도를 상징함은 다른 한편으로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지. 그 태양이 다시 오실 주님, 역사상 마지막 일출을 상징하기 때문이야. 따라서 동쪽을 향한 기도는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마중하며 동쪽을 향한 전례는 그러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적 과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나처음: 그럼 가톨릭은 동쪽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인가요. 라파엘 신부: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성당 동쪽에 자리한 제대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지. 미사와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제대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공간이야. 따라서 미사는 제대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이며 기도이지. 제대를 중심으로 기도의 방향을 동쪽으로 향하는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고 있는 전통이야. 조언해: 현대인에게 이런 제대의 방향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지 않나요. 하느님께서 어디에나 두루 계시니 굳이 기도하는 데 방향과 장소에 얽매일 필요가 있나요. 라파엘 신부: 맞아. 이 말은 가톨릭교회의 ‘보편성’과도 연결되는 것이야. 우리의 기도는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중개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 부합해야 해. 떠오르는 태양에 담긴 우주적 상징은 모든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 보편성을 표현하는 것이지. 따라서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에서 어느 때 기도해도 하느님께 우리의 기도가 닿을 수 있지. 교회가 제대 중심의 전례를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성화하시는 하느님의 활동과 인간이 성령 안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가 성찬례 즉 미사에서 그 정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란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30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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