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원한 삶 -하느님 안에 정주(定住)-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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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12-30 | 조회수53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 .
2013.12.30 월요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1요한2,12-17 루카2,36-40 . . 영원한 삶 -하느님 안에 정주(定住)-
. .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시편131,3) .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흔들림 없는 정주의 삶입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삶입니다. 영혼이 하느님께 닻을 내려야 비로소 안정과 평화입니다. 영혼이 하느님께 닻을 내리지 못해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 얼마 전 읽은 내용을 나눕니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한 자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이는 완벽한 자이다. . 미숙한 영혼의 소유자는 자신의 사랑을 세계 속 특정한 하나의 장소에 고정 시킨다. 강인한 자는 그의 사랑을 모든 장소에 미치고자 한다. 완벽한 자는 그 자신의 장소를 없애 버린다.’-위그 드 생 빅토르-
. 하느님이 정처가 된 완벽한 이에게는 하느님이 본향이요 세상이 타향입니다. 완벽한 영혼의 사람은 하느님이 그 정처이기에 저절로 자신의 장소는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무엇에도 매이거나 집착함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영혼에겐 모든 곳이 고향이요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 바로 예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에 속한 것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세상 모두가 다 지나갑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영원합니다. 요한 사도 역시 세상도 세상에 속한 것도 사랑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 아버지를 사랑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전념할 때 영원한 삶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 정주할 때 세상 지나가는 것들로부터, 세상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삶의 무의미와 허무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한나 역시 좋은 본보기입니다. . 이미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 분입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 이처럼 하느님 안에 정주하며 하느님을 섬길 때 평화와 기쁨, 위로와 치유, 내적 자유와 영원한 삶입니다. . 마침내 시메온 처럼 한나도 탄생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구세주 탄생의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부모 또한 하느님 안에 정주한 튼튼하고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 나자렛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의 자리입니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 아기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 안에 정주할 때 튼튼한 영혼, 충만한 지혜에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삶입니다. 하느님 안에 정주할 때 진정 겸손과 평화의 삶임은 다음 시편이 입증합니다.
.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와 같습니다.’(시편131장 참조).
.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이와 같은 우리 모두에게 당신 평화와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십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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