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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9월에 기념하는 성모님 관련 축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10 조회수2,482 추천수0

[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9월에 기념하는 성모님 관련 축일

 

 

구원의 서광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9월 8일)

 

예수님과 관련하여 교회에서 지내는 많은 축일들 가운데에는 한 가지 중심 사건에 연계하여 제정된 축일들이 있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은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의 여섯 달 전에 위치 한다. 또 ‘예수님 성탄’에 따라 만 아홉 달 전에 예수님의 잉태를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을 지낸다.

 

그렇다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초대교회 때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로마 교회에는 네 가지 커다란 성모님 축일이 있었는데, 곧 성모 영보(주님 탄생 예고), 성모 취결례(주님 봉헌), 성모 승천, 성모 탄생 축일이다. 앞의 두 가지 축일은 본래대로 주님 축일로 환원되었고, 성모 승천과 성모 탄생은 오랫동안 성모님의 축일로 지내왔다.

 

성모 탄생 축일은 초대 교회에서부터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앞길을 미리 준비하였다면,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인성을 준비하기 위한 하느님의 선택받은 특별한 도구였다.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한 도구로써 성모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예수님께서 원죄 없이 탄생하셨으므로 성모 마리아도 원죄 없이 탄생하셨음은 당연하다는 교리가 세워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 교리는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성모 마리아도 탄생뿐 아니라 잉태되실 때에도 원죄가 없으셨다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9월 8일)에 연계하여 아홉 달 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축일은 4세기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축일의 기원은 현재 성 안나 성당으로 알려진 예루살렘의 성당 축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축일은 동방 교회의 수도자들이 로마 교회에 전해주어 7세기 말부터 경축하게 되었고, 점차 전체 서방 교회가 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13세기부터 이 축일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어 8부 축제까지 지내는 큰 축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교회의 전례개혁에 따라 오늘날에는 일반 축일로 지내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원죄 없는 잉태 축일’이 전 교회로 확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교회가 성모 마리아의 성탄을 축일로 지내는 것은 구원의 역사적 측면에서 마리아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모 탄생 축일의 전례문들은 구세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의 탄생이 예수님의 인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탄생은 단순한 인간의 탄생이 아니라,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보증하는 기쁨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며, 교회는 이것을 기뻐하고 그 탄생에서 인류 구원의 희망을 얻는다.

 

성모 마리아의 탄생은 우리 구원의 서광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참 모델이요, 예수님과 만나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문이며,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기 위한 가장 탁월한 조력자이시다. 성모 마리아의 탄생으로 구원이 비로소 시작되었다면, 작은 마리아인 우리도 그리스도를 낳아 주어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해야 할 소명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성모님의 도우심과 전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위로와 희망이신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아드님과 함께 수난하시는” 성모님의 고통을 기념하는 날로,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에 기념한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외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써 함께 바치셨으며 당신이 낳으신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다”(교회헌장 58항). 사실 성모님께서는 일생을 예수님의 길을 뒤따르며 어머니로서 아드님의 고통에 온전히 동참하셨다.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 오늘도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받으시는 어머니의 고통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이 축일을 제정하였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은 6세기에 동방에서 먼저 발달되었고(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이를 표현해왔다), 서방에서는 12~13세기 프란치스코 수도회 전통에서 발견된다. 이후 이 신심을 목적으로 한 성모 마리아의 시녀회(세르비트회)가 창립(1233년)되면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마리아의 시종회는 이 신심을 9월 셋째 주에 거행하였으며(미사와 행렬을 함), 1600년경에 대중화되었고, 166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에 의해 축일로 인가되었다.

 

교황 비오 7세(1814)에 의해 모든 교회에 보급되었으며, 비오 10세에 의해 주님의 십자가 현양 다음 날인 9월 15일로 축일이 승급(1908년), 고정되었다(1913년). 성모 통고의 숫자는 처음에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성모 칠락’과 연관되어 ‘칠고’로 고정되었다. 이는 쿠덴베르크의 사제였던 요한의 영향 때문이었다.(*聖母七樂: 영보, 엘리사벳 방문, 예수 탄생, 예수 공현,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으심, 예수 부활, 성모 승천)

 

“인생은 고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고통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멍에다. 성모 마리아의 삶도 고통으로부터 예외는 아니었다. 그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고통의 삶을 사셨다. 성서에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받았던 성모님의 고통이 여러 장면 등장하는데, 이중 일곱 가지 장면을 모아 ‘성모칠고’(聖母七苦)라 부르고 있다.(시메온의 예언(루카 2,35) / 에집트로 피신하심(마태 2,14) / 예루살렘에서 삼일 동안 어린 예수님을 잃으심(루카 2,48) / 골고타로 오르신 예수님을 따르심(요한 19,17) /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으시는 예수님과 함께하심(요한 19,25) / 십자가에서 내리신 예수님을 품에 안으심(요한 19,40) / 예수, 무덤에 묻히심(요한 19,42))

 

성 베르나르도는 슬퍼하시는 성모님을 가리켜 “정신적 순교자”라 했다. 성모님은 예수님이 악인들에게 매질을 당하시고 모욕과 조소와 멸시를 받으시는 이 모든 것을 직접 당신이 당하시는 것보다 오히려 더 뼈아프게 느꼈고,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에도 당신이 친히 죽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성모님이 ‘순교자의 모후’라는 존칭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한편 성모님이 겪으신 고통들은 우리에게는 희망이 된다. 당신이 겪으셨기에 우리를 위로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이 죽는 모습까지도 지켜본 분이시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은 불효 중의 불효이고, 자신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고통은 고통 중의 고통이다. 그런데 성모님은 눈앞에서 아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셔야 했고,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 십자가 아래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셔야 했다.

 

성모님이 이 같은 고통을 겪으셨기에 우리가 겪는 어떤 고통도 모두 이해해주실 수 있으며, 그 모든 고통을 이겨 내셨기에 우리의 고통도 이겨 내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을 때마다 우리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자.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이 고통의 폭풍 속에서 건져달라고 애원하자. 자애로우신 어머니 성모님은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9월호,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광주대교구 대치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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