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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응답하라, 전례: 성경에서의 예배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05 조회수2,616 추천수0

[응답하라 ‘전례’] 성경에서의 예배는?

 

 

우리는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을 제대로 된 새해라고 생각하여, 가족들이 모여 어른에게 세배를 드리고 함께 떡국을 먹는 명절로 지냅니다. ‘설날’의 유래에 대한 가설 중에서 ‘낯설다’에서 왔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낯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이겠지요.

 

예비자교리를 하다 보면 개신교에서 개종한 분들을 만납니다. 그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천주교의 낯선 용어들입니다. 하느님의 호칭들인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여호와’를 ‘야훼’로 불러야 하고 교회와 관련해서는 ‘기독교 예배’를 ‘천주교 전례’로, ‘예배당’을 ‘성당’으로 용어 정리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기독교 예배’와 ‘천주교 전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배와 전례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배(禮拜, 라틴어: cultus, 어원 colere=경배하다)는 종교적 언어 영역에서 아주 일반적인 낱말이며,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하는 의식’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초월적 존재를 섬기는 모든 종교가 행하는 의식(儀式)을 말합니다. 반면에 ‘전례(典禮, 라틴어: liturgia)’는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규정된 예절’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주님께서 설립한 교회의 예식을 의미하여, 규정의 기준인 주님과 규정을 역사적으로 정해온 교회가 중심입니다.

 

보통 개신교에서 ‘기독교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교 예배’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基督敎)’는 ‘그리스도교’의 중국어 음역(音譯)이기 때문에, 본래의 음을 그대로 발음할 수 있는 현대인은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그리스도교 예배에 천주교의 고유하고 공식적인 예배인 ‘전례’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서 천주교 전례를 하느님께 드리는 충만한 예배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화해의 완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느님께 충만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5항).

 

그리스도교에서 예배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근원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종교적인 힘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실현하는 내적이고 외적인 행위들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예배의 기본 요소들은 복종, 경배, 신심, 헌신, 기도의 직무, 그리고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신비나 거룩함에 대한 정서적 반응 등입니다.

 

 

구약 성경에서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에 도달하는 성서적 계시의 전망에서 그리스도교 예배의 독창성은 예배의 형태가 아니라 예배의 내용에 있습니다. 특히 일반 종교에서 계시된 예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잘 드러납니다.

 

구약성경의 예배는 이스라엘의 특징적 예배이며, 유일신 하느님 경배에 집중된 이 예배의 출발점은 일명 ‘출애굽’이라 표현되는 이집트 탈출 사건입니다. 사실 이 예배는 모세에게 주어진 계시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집트 탈출을 가능하게 한 종교적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위하여 축제를 지내게 하여라”(탈출 5,1). 곧 이집트 탈출의 동기가 광야에서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광야로 간다는 것은 주님과 만나고자 이방신들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할 필요성 때문입니다. 약속된 땅에 정착한 다음, 우상 숭배의 금지와 특정한 희생 제물의 금기라는 특징을 갖는 예배의 형성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으로 만든 성전 건축으로 이어집니다.

 

스페인 전례학자인 홀리안 로페스 마르틴 주교는 구약 성경의 예배의 특징을 공동체적 차원, 내적 차원, 종말론적 차원으로 정리합니다. 첫째, 예배의 공동체적 차원은 먼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공생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백성은 주님께 속해 있기에 계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탈출 19,5-6; 신명 6,4-9; 시편33,12 참조). 모든 예배 행위는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현존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백성의 의지를 드러내도록 방향을 잡고 있었습니다.

 

둘째, 예배의 내적 차원은 봉헌이나 희생 제사 같은 예배의 외적 요소들을 제외하지 않으면서, 내적 정결의 필요성과 계약에 대한 충실성을 말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사회 정의 그리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이루는 연대성과 연결됩니다. 셋째, 예배의 종말론적 차원은 기념적 차원과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과거의 모든 사건은 주님께서 언제나 당신 약속을 지키실 것임을 증명하고, 축제와 예절에서 그것들을 기억하는 것은 계속적으로 실현된 성취에 대한 보증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된 예배!

 

구약의 예배의 차원들은 신약의 예배에서도 이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 규정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에 의해서 신약의 예배가 결정됩니다(마태 5,17 참조). 그분에 의해 탄생한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령 강림이라는 기초 위에 이스라엘의 예배를 완성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한동안 성전에 자주 모여 기도하였고 유다의 종교규정을 지켰습니다(사도 2,46;3,1 등 참조). 그러나 유다인의 독립전쟁(66년-73년) 중에 로마군단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독립된 예배형태로 발전합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교 예배의 토대는 참된 예배의 ‘성전’이 되신 예수님의 현존 자체입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2,21). 또한 하느님의 은총은 신앙과 마음의 회개와 연결되어, 하느님의 거룩함을 본받는 삶을 이끌어 갑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이 은총들은 성화할 능력이 전혀 없는 옛 제사들을 대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희생 제사의 열매입니다(히브 9,13 참조). 그리스도께서 설립하신 세례성사과 성체성사 그리고 다른 성사들은 이 희생제사의 구원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 예배는 계속해서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령 안에서 한 형제로 모이게 합니다(사도 2,41-45; 4,32-35 등 참조). 예수님은 ‘영과 진리 안에서’(요한 4,23) 드리는 예배가 드려질 때가 올 것이라고 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이 머무는 성전(요한 2,21-22; 묵시 21,22 참조)이라고 밝히셨고, 참된 예배를 세우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신앙인 각자의 삶을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영적 예배가 되도록 신앙과 사랑 속에서 변화시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천주교 예배는 크게 전례행위와 신심행위가 있으며, ‘성음악과 전례에 관한 훈령’(1958.9.3.)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밝혀줍니다. “전례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나 그분의 이름으로 교회가 제정한 거룩한 행위로, 하느님과 성인들과 복자들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고자, 사도좌가 승인한 전례서에 따라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적법하게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수행하는 것이다. 그 밖의 거룩한 행위들은, 성당 안에서 수행하든 밖에서 수행하든, 그러한 행위에 함께하고 주관하는 사제가 있든 없든, 언제나 신심행위라고 부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2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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