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특집] ‘십자가의 길’ 궁금증 풀이
고난의 예수님 걸으셨던 그 길… 고통에 동참하는 신심행위 - 경북 군위군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십자가의 길 기원 신약성경 복음서들에는 예수님이 걸었던 십자가의 길 행로와 그 중에 만났던 다양한 인물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과 변화의 과정을 거쳤지만 무엇보다 복음서 기록들이 가장 중요한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 사후 예루살렘 초대교회 신자들은 2세기경부터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이 남아 있는 장소들을 거룩한 장소들로 보존하고 경배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무덤이 있던 곳에서 출토된 고고학적 발견물에서 이 사실이 확인된다. 4세기 말 순례자 에테리아(Etheria)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해골산 정상에는 부활(Anastasis), 십자가(Crux), 순교(Martyrium)라고 이름 붙여진 장소가 있었고 각 장소마다 소경당이나 대성당이 세워져 있었다. 주님 부활 대축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부활’에서 ‘순교’ 지점까지 신자들이 행렬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행렬이 현대 신자들이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와 같은 의미와 형태를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오늘날 신심행위로서 십자가의 길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중세 이후부터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 보나벤투라(1217?~1274) 등 성인들이 십자가의 길이 신심행위로 자리 잡는 토양을 마련했다. 이와 더불어 예루살렘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11~14세기에 전개된 ‘십자군 운동’도 십자가의 길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십자군 운동은 예루살렘 거리에 있던 예수님의 여정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운동 기간 중이던 12세기부터 예루살렘 성지순례가 다시 시작됐고, 1233년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에게 예수살렘 성지 수호와 상주 임무가 부여돼 예수 수난에 대한 신심이 촉진, 전파됐다.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십자군과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거주지에 예수님의 마지막 행로를 보여 주는 모형들을 건립하면서 십자가의 길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 2018년 5월 청주교구 배티성지를 찾은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십자가의 길 14처 십자가의 길 기도는 흔히 14개의 처(處, Station)로 돼 있다고 해서 ‘14처 기도’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성당이나 성지 십자가의 길도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받으심을 묵상합시다’에서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까지로 이뤄져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69항에도 “총독 관저에서 골고타와 무덤에 이르는 14처는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한 걸음씩 따라가는 것이다”라고 14처가 언급돼 있다. 십자가의 길이 14처로 굳어진 것은 클레멘스 12세 교황(재위 1730~1740)이 1731년 4월 3일 「십자가의 길 신심행위의 올바른 거행을 권고함」이라는 교령을 공포하면서부터다. 이 교령 공포로 당시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파돼 있던 십자가의 길을 14처로 한정하고 각 처마다 고유한 수난 사건을 고정시켰다. 이전까지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5처, 7처, 11처, 12처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가 18세기 들어 14처 십자가의 길이 가장 널리 전파됐고 이것을 교황청이 승인한 것이다. 십자가의 길이 꼭 14처인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분리돼서는 안 된다는 일부 신학자와 전례학자의 의견에 따라 부활에 대한 묵상을 담은 15처가 더해진 십자가의 길을 바치기도 한다. 1975년에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해 부활로 완결되는 16처 십자가의 길을 승인하기도 했다. - 안동교구 여우목성지 십자가의 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십자가의 길 한국교회 전파 한국교회 신자들도 박해시기부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지만 정확한 시기까지 알기는 어렵다. 1862년 목판으로 인쇄돼 1969년 「가톨릭 기도서」가 나올 때까지 한국교회 공식기도서로 사용된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功課)에는 주일미사를 드릴 수 없을 때 대송(代誦)으로 ‘주일경’과 ‘축일 기도문’을 바치도록 하면서 기도서가 없거나 글을 모를 경우 ‘성로선공’(聖路善功)을 바치라고 규정돼 있다. ‘성로선공’은 십자가의 길을 뜻하던 예전 용어다. 박해시기에 이미 신자들 사이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가 널리 행해졌고 이후에도 중요한 신심행위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십자가의 길 언제, 어디서 바치나 십자가의 길 기도는 신자들이 주로 사순 시기 중 금요일에 성당에 모여 바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기도서」에는 “아무 때나 바칠 수 있지만 특별히 사순 시기 금요일과 성 금요일에는 마땅히 바쳐야 한다”고 설명돼 있다. 교회법에는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시기나 장소에 대한 규정은 없다. 「가톨릭 기도서」에 표현된 ‘마땅히 바쳐야 한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겪었던 수난과 고통에 신자들이 진실한 존경과 회개의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일반적으로 14처 형상이 설치된 성당이나 성지에서 바친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바칠 수 있는 기도이기도 하다. 성당이 너무 멀어 갈 수 없는 때, 항해 중이거나 아프거나 또는 감옥 등에 있을 때는 축복받은 십자가를 모시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수도 있다. [가톨릭신문, 2022년 3월 27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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