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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희년(4-2)/ † 성령세례를 간절히 사모하라!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3 조회수866 추천수0 반대(0) 신고

(특집D-4) * 희년(4-2)/ 성령세례를 간절히 사모하라!

                  (성경 : 레위25,8-10, 39-41; 에페1,13,; 사도26.18; 콜로1,12; 루카15,12-23; 로마6, 6-7,              ,                     8,2; 요한8,34; 갈라5,1)


<이 글은 * http://cafe.daum.net/yoondaniel 매일말씀묵상의 희년(4-1)과 연결됨>


그런데, 오늘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거듭남, 중생, 성화와 성령세례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다. 곧 성령세례는 그분의 실재를 만지는 것으로써 가능한 한 성화를 도우고 격려해 준다. 에페1,13절의 말씀이 성령세례와 성화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에페1,13절은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분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도장 찍혔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 말씀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해 보자!

나는 몇 해 전 봄이 왔을 때, 몇 그루 잡목으로 팽개쳐 오던 우리 집 작은 정원을 정리하여 텃밭으로 가꾸기로 하였다. 땅을 파고 고르고 밑거름을 주고, 상추, 고추, 깻잎 등의 씨를 뿌렸다. 특히 씨를 너무 땅에 깊이 묻거나 얕게 묻으면 안 된다는 이웃집 주인의 충고를 새기면서 정성스럽게 그 깊이를 측정해 가면서 심었던 것이다. 이제 땅에 묻힌 그 씨는 생명의 발아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해 봄에는 유난히 오랫동안 추웠고 햇볕도 부족했고 봄비도 잘 내리지 않았다. 몇 주일이 지나도록 수시로 정원을 살폈으나 아무런 반응을 발견할 수 가 없었고, 내가 뿌린 씨가 정말로 생명이 있는 씨였는지,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거의 포기 상태로 있던 약 3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채소밭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싹이 돋아난 것이다!

 

놀랍고 기쁘고 신비하기도 했으나 그 이상의 변화는 별로 없었고, 그런 상태로 여러 날이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래 기다렸던 비가 밤새 풍성히 내렸고, 그날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날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의 텃밭은 온통 새싹들의 성장으로 가득차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실화는 바로 성령세례와 성화와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땅에 묻은 씨는 그 안에서 계속적으로 생명이 존재했었다. 단지 나는 표면에 보이지 않음으로 그것을 알지 못했고 의심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씨 속에는 여전히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씨앗 봉투 속에 들어 있던 그 씨가 땅 속으로 묻혔을 때, 희년의 첫 번째 축복인 우리의 기업(소유), 곧 하느님께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희년은 바로 직전 해의 대속죄일의 나팔소리를 포함한다! 이것은 내적인 생명, 곧 본질적인 영이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봄비가 밤새 내렸고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였을 때, 그 움추렸던 씨의 생명이 성장의 능력과 자극을 받아 힘차게 그 싹을 대지로 밀어 올렸고, 이제 하루가 다르게 놀라보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이 주님을 믿어 거듭나는 그 순간에 하느님의 생명의 씨앗이 그 사람의 영을 살리면서 동시에 그 영 안에 잉태된다!


그리고 하느님의 생명이 사람의 영 안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마치 씨앗이 땅 속에 묻힌 것처럼 아주 미세한 성장을 가진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성령의 단비와 빛이 임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부어졌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생명의 힘과 활력이 용솟음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희년의 두 번째 축복인 죄의 노예 상태에서 구속되어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분의 일과 사역을 위해서 경륜적으로 위에서 내려오는 외적인 영, 곧 성령세례의 축복인 것이다(사도행전 2)! 

 

성령세례의 축복은 그의 성화, 곧 그에 관한 모든 것이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성화와는 필연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있으나 그들은 독립적이다! 그러나 이것을 체험하지 않는다면 내재한 생명력의 활력과 외적인 능력 있는 사역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고 체험하기 전에는 오직 혼란만이 있을 뿐이다! 성령세례를 체험하지 못한 믿는 이는 초자연적인 영적인 체험은 물론 귀신을 절대로 쫓아낼 수 없다!


내가 지난 글들에서 수시로 강조하는 영적 실재(reality)란 바로 성령세례와 동일한 뜻이다!

성령 안에 있는 영적 실재를 접한 사람, 곧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역시 영적 실재를 접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즉시 그 마음속에서부터 아멘으로 화답하며, 영적으로 그를 알아보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속임수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나 글을 오 분만 듣고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의 영적인 실재를 정확히 가름할 수 있다.


시편42,7절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실재가 실재를 접하며, 영적 실재를 접한 사람들은 서로를 안다는 말이다! 당신이 실재를 접한 후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아직 실재를 접하지 못했거나 실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그 사실을 지각한다는 말이다!

 

당신은 그 사람이 아직 실재를 접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대개 이들은 아직도 지식, 교리, 교회법이나 외형을 강조하며 스스로는 영적인 사람으로 자인하고 있다! 하느님 앞에서 성경이 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단지 실재를 말한다! 이런 진실성, 곧 실재와 관계하게 되면 사람은 교리, 의문, 인간적인 생각이나 방법에서 떠나게 된다. 그것이 세례이든, 떡을 떼는 일이든, 교회든 간에 항상 실재가 있다. 단순히 외적인 형식, 절차, 교리, 교회법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영안에서 살아계신 주님, 곧 실재(reality)를 만나는 것! 그것만이 참된 예배이며 영적인 모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의식과 형식과 생명이 없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주는 영이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시다!(요한6,63)

 

이 실재를 접촉하는 것, 곧 성령세례만이 영적인 것이며, 그 외 일체는 망상이다! 남을 속이는 것은 거짓말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을 망상이라고 한다. 바오로도 한 때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면서 하느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필리3,6).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옳다고 믿었다. 이것을 망상이라고 한다!

 

망상은 마음의 문제이다. 망상에 빠진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망상에 빠진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해놓고도 자기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 줄 수가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들은 그 망상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진리라고 전파하는데 있다.

 

이 혼란은 그리스도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시로 반복적으로 발생되어 왔던 것이다! 성령의 단비와 뜨거운 햇볕처럼 성령세례, 곧 실재를 만진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최고 형태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며, 이러한 확신으로 말미암아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성령세례는 희년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성령세례란 누구나 받을 수 있지만 또한 누구나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성령세례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졌다면 모든 성도들은 과연 그것을 받았는가, 혹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구하는 사람도 왜 그것을 아직 받지 못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면에서는 본인의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 한 면에서는 본인의 기도 의지와는 전혀 별개의, 오직 주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수동적인 것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아는 분명한 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삶의 지독한 고난 중에 있을 때 실재를 접했다는 것뿐이다!


성령세례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진리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자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능력과 확신을 우리에게 채워서 우리가 그의 증거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천국에 대하여 미리 맛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체험이다. “성령세례”, “성령의 인침”,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케 하시는 성령의 보증”, “영의 실재는 모두 동일한 의미의 표현들이다.


사실 우리에게 이것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성령세례를 체험하는 것만이 진정한 희년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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