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미사의 영성 (18) 미사의 영성 : 하느님의 자비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체험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수고와 노력 끝에 삶의 힘겨운 고개를 넘고 나서 생각합니다. ‘이제는 내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희망을 가져보지만, 여전히 또 다른 삶의 힘겨움이 눈앞에 마주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체험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란 한낱 스쳐 가는 바람이며, 한 줌의 먼지와도 같다는 것을.... 삶을 살아가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는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날의 부족함에 대해 가슴을 치며 뉘우칠 수 있는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그런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께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이렇게 청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으로 표현되는 이 자비송은 눈이 멀었던 바르티메오의 외침인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와 연관된 것으로 원래는 동방 교회에서부터 행해지다가 5세기경 순례자들에 의해 로마 교회에 유입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자비송은 찬미와 참회를 위한 간청이라는 이중적 가치를 지닙니다. 첫째로, ‘주님’(Kyrie)이라는 호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참된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찬미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둘째로 ‘자비를 베푸소서’(eleison)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 모두가 죄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간청하게 됩니다. 이러한 주님의 자비에 대한 간청은 다른 말로 ‘하느님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에 대한 희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지칠 줄 모른다는 것은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또 어떤 처지에 있든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나 자신이 죄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갈지라도, 그리고 비록 신앙인답게 제대로 살지 못했을지라도, 이런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지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저처럼 죄 많은 사람도 괜찮을까요? 제가 이렇게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저에게도 주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실까요?’ 이렇게 움츠러들고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먼저 떠나지 않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은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랑을 우리는 “주님의 자비”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그 자비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이렇게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2022년 6월 19일(다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춘천주보 2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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