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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1 조회수1,707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5월 21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사도 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복음 요한 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저울이 하나 있습니다.

이 저울이 수평이 되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언제일까요?

양쪽 저울 위에 똑같은

무게가 놓였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양쪽의 무게가 달라질 때,

그러니까 한쪽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무거워지면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한쪽이 49.5kg,

 다른 쪽이 50.5Kg이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집니까?

혹시 겨우 0.5Kg 차이니까

그대로 수평을 이룰까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100%의 행복이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0.1%라도 행복의 무게가

 더 나간다면 분명히 행복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100%의

행복만을 원합니다.

그러다보니 100%의 행복을

만들지 못하는 불행의 이유를

찾아냅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눈에 보이는 것이 이 불행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불행의 무게가

 더 나가게 되는 것이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평화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특히 마음속은 어떠할까요?

전쟁터가 따로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행복은

대단한 것에서만 오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의 평화로움,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메시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악,

하늘과 안개 그리고 별 등을 통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의 무게를

더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50%가 넘는 행복으로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지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통해서는

마음이 산란해지지도 또 겁을 내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외적인 평화일 뿐입니다.

즉, 잘 사는 것처럼 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저 겉으로만

 평화스러워 보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싸우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마음의 혼란은 대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마음에

혼란이 없는 내적인 평화입니다.

그래서 굳이 많은 것들을 소유할

 필요가 없으며 누군가를 누르고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를 위해 나누고 배려하는

 참 행복의 삶을 삽니다.

행복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여지게 합니다.

어떤 평화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추구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모든 것은

어렵지만 해낼 수 있다.

(간디)

(바뇌 성모님)


악수

지난 성유축성 미사 때였습니다.

 축성된 성유를 받기 위해,

또한 교구장 주교님께 충성서약을

 하기 위해 교구내의 신부들이

참석합니다. 미사 행렬을

준비하고 있는데 교구장

교님께서 신부님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제 앞에서는 “잘 지냈지?”

라고 물으시고는 다른 신부와

인사를 나누시는 것입니다.
미사 시간이 임박해서 시간이

부족할 테니 당연히 선배

신부님들과만 악수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부가 제게 말합니다.
“다른 신부와 다 악수하는데

악수 안하고 그냥 지나가셨잖아요.

악수 하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혹시 주교님께 잘못 보였어요?”
사실 우리 삶에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행동을

상대방이 하지 않았을 때,

‘내가 잘못한 것이 있나?’,

‘내게 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나?’

등등의 생각을 확대하면서

 끊임없이 분석을 해나갑니다.

그러면서 없었던 일까지 만들게 되지요.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사실만을 똑바로

 보면서, 확대 해석하는 분석에서는

 나오는 의견을 제외시키라는 것입니다.

 이 의견이 맞을 수도 있겠다면서

힘든 마음이 되면 다음의

과정을 거치면 어떨까요?
1) 사실만 믿으십시오.
2) 그래도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나쁜 의도가

없다고 믿으십시오.
3) 이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를

질문하십시오.
4) 이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런 말과 행동에 주의해달라고

부탁하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더 이상

확대해석해서 스스로의 자존감이

상하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보랭 성모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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