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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알기/고기잡이 기적(루가5,1-1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8 조회수1,895 추천수0 반대(1) 신고

  성경바로알기    

             4월21일 고기잡이 기적


고기잡이 기적(루가5,1-10)

 

(루가복음 5:1-10) 

1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2 그 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그 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 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 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 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 먹었던 것이다. 그는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여러분이 너무 잘 아는 이야기죠? 물고기를 잡던 시몬에게 앞으로는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물고기와 구원받는 사람을 대비하고 있어요. 대조시키고 있단 말예요.

사람을 낚는다는 건, 저주의 바다 속에서, 자기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그 물고기의 삶! 자기 가치의 확장! 물고기 다가라는 단어 자체가, ‘확장, 다수 많아짐, 번성이런 뜻이라 그랬잖아요? 그런 물고기를, 물고기의 삶을 살고 있는 자를, 건져 올려서, 낚아 올리는 것 뭐예요? 물속에서 살아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자를 낚아 올리는 건, 뭐죠? 물고기 낚아 올리면 어떻게 돼요? 죽어요! 죽여서 살리겠다는 뜻이에요. 산 자인 척하는 자를 낚아 올려서, 죽여서, 반드시 살래내게 하겠다는 뜻이에요. 누구에게? 베드로에게! 성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역할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그런데 거기서 시몬의 배가 나와요. 여러분, 시몬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시므온에서 나온 건데. 광야, 사막이란 뜻이에요. 전 시간에, 성도에게 닥치는 기근(飢饉), 기갈(飢渴), 굶주림, 이런 것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죠, 3년 만의 기근! 하늘이 닫힘! 이런 거요. 거기에 생수이신 예수가 부어져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가? 이거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런데 시몬이란 이름 자체가, ‘사막, 광야란 말예요. 베드로는? 잘 아시죠? ‘페트라, 반석.’ 반석에서 뭐가 나와요? 생수가 나온다 말예요. 그러면 시몬 베드로라는 것 자체가 뭐예요? 사막, 광야였던 자를, 광야, 사막인 자들은, 물이 없는 자, 말씀이 없는 자들은, 뭘 건져 올리는데, 뭘 건져 올리느냐하면? 그 말씀!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로, 엉터리! 이 세상에서 번영과 확장과 자기증명! 자아실현! 이런 것들을 끌어 모으는 거예요. 열매로 맺는 거예요. 광야는, 시몬은! 그런데 베드로는 어때요? 생수가 쏟아지게 되면, 사람, 구원 받은 자가 올라오는 거예요. 요 대조를 하는 거예요.

그 시몬이, 밤새 물고기를 잡다가, 한 마리도 못 잡고 그물을 씻고 있었어요. 이게 원래에, 이 세상 사람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엉터리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결론이에요. 이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마지막에는 벅벅 그물만 닦고 있는 거, 아무런 소득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을 그래도 삶으로 다시 살고 갔다는 건 아시죠, 그죠? 예수님은 구약을 부정하러 오신 게 아니라, 구약의 율법으로 예수를 설명해 놓았는데, 못 알아보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구약을 삶으로 살고 가신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신약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소품들은, 전부 구약적 배경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성경을 유기적으로 봐야 된다고 제가 말씀드린 거예요. 그게 성격신학이라는 거란 말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안 된다 말예요.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그 라는 소품이,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설명이 완료가 되죠,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어디에서 그 배라는 소품이 설명이 완료가 돼요? 요한묵시록에 어떤 배가 나오잖아요?

(요한묵시록 18:15-19) 15 그 여자 때문에 부자가 된 이 상인들은 그 여자가 받는 고통을 보고 두려워 멀리 서서 울고 슬퍼하며, 16 '무서운 일이다! 고운 모시옷과 주홍색 옷과 진홍색 옷을 몸에 두르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단장하던 이 큰 도시에 화가 미쳤구나! 17 그렇게도 많던 재물이 일시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 모든 선장과 선객과 선원과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다 멀리 서서 18 그 도시를 태우는 불의 연기를 보고 '저렇게 큰 도시가 또 어디 있었단 말인가?' 하고 외칠 것입니다. 19 그리고 그들은 머리에 먼지를 뿌리고 슬피 울면서, '무서운 일이다! 이 큰 도시에 화가 미쳤구나! 항해하는 배의 선주들이 모두 그 도시의 사치생활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었건만, 그것이 다 일시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 하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장사하는 배예요. 그런데 이건 바벨론이라는 걸 여러분은 아시죠, 바벨론을 배라 그래요. 그리고는 이 배가 장사하는 배라 그러죠. 그런데 여기에서, 묵시록을 읽어보면, 사람의 영혼이 거래됐다는 거 아시죠? 영혼이 거래(去來)가 됐어요. 그들의 거래품목에,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 있다니까요. 뭐겠어요? 역사 속에 던져진 가짜 교회 얘기하는 거예요. 그냥 세상만 이야기하는 게 아녜요. 성경은 항상 성도와, 성도인 척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왜 봐요? 안 본다니까요. 성도인 척 하지만, 말씀을 제대로 못 받아들이는 가짜들과, 그 진의(眞意)를 아는 자들에게 준 게 성경이란 말예요.

그러니까 요 배는 뭐냐 하면? 인간의 영혼이 거래되는, 장사하는 배! 예수님이 뭐라 하시죠? 옛 성전을? ‘너희들은 여기를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구나!’ 그러잖아요? 그러면 뭐겠어요? 구약의 배, 인본주의, 율법주의, 그 깃발을 높이 든, 구약의 옛 성전! 구약! 옛 율법주의! 요 것을, 요 바벨론! 요 장사하는 배! 요게 지금 함축(含蓄)하여 상징하고 있다는 걸, 여러분 알 수 있겠죠, 그죠? 장사라는 건, 인간들이 자기의 노력과 수고를 들여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거죠. 성전이 왜 장사하면 안 되느냐 하면? 성전은 인간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란 말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화를 낸 거예요. 왜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느냐고! 바로 이 바벨론이라는, 인간들의 가치와 유익을 위한 고 배가 등장하고 성경에는요.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상징하는 예수라는 두 배가 등장해요. 잘 이해하세요

 

고 배가 시편에도 나와요.

(시편 48:7-8) 7 동풍에 휘말리어 깨지는 다르싯의 배와도 같았다. 8 우리 하느님의 도성, 만군의 주 야훼의 도성에 와 보니 과연 듣던 그대로 하느님께서 이 성을 영원토록 굳히셨사옵니다.

다르싯의 배라는 게 나와요. 다르싯의 배를 동풍으로 부순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동풍이라고 번역이 된 카딤 르와흐, 르와흐는 뭐예요? 성령이죠? 그런데 반대쪽의 영이에요 카딤 르와흐!’ 그걸 동풍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제가 지난 시간에, 이 영이라는 거, ‘왜곡된 영, 더러운 영반면에 참된 영이게 대조된다. 그랬죠, 성경에서? 그런데 왜곡된 영, 더러운 영은 때때로 성경에서 귀신, 마귀, 이렇게 번역이 된다. 그랬잖아요.

(요한복음 6:63) 63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자 말씀이, 성령! ‘프뉴마! 르와흐!’예요. 생명! ‘조에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말씀으로 오신 예수 안에, 생명이 들어있다고 선언한 요한복음 1장의 말씀이, 지금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무익한 육은 뭐겠어요? 무익한 육! 살려주는 그 말씀, 영과 반대되는 무익한 육! 말씀을 표피로만 육의 영역의 안목으로만 바라보는 거, 고건 육이란 말예요. 육의 안목으로 말씀을 보게 되면, 모든 게 도덕(道德)과 윤리(倫理)가 돼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면, 보다 훌륭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가에 대한, 처세술(處世術)로 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고건 무익하다는 거예요. 살리는 건 진짜 말씀이라는 거예요. 영이에요. 그게!

 

이 영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거예요. 말씀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영이 곧 말씀이요, 생명이라 그랬잖아요? 따라서 말씀은, 예수로만 결론이 나야 되죠? 예수 안에만 생명이 있고, 예수가 말씀이니까! 그러면 모든 말씀을 읽을 때, 여러분이 거기에서 예수를 끄집어낸다면, 그게 뭐겠어요? 그리고 삶을 살면서, 모든 게 다,‘ !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면, 나는 존재도 아니야!’라는 이 예수로 여러분의 삶이 결론이 나면, 뭐예요? 여러분의 삶과 말씀을 갖고, 여러분이 뭐를 낳는 거요? 예수를 낳는 거예요. 그게요!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여, 도덕과 윤리나 아니면, 여러분에게 강요되는 어떤 규범, 아니면 세상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살까에 대한 처세술(處世術)! 이런 걸로 읽게 되면, 그건 무익(無益)하게 되는 거요. 성경은 생명(生命)이신 예수에 관해서만 기록되어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그러잖아요? 너희들이 성경에서 영생(永生)이 있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詳考)하는데, 나에게는 안 오는 구나. ? 성경이 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인데 도대체 거기서 영생을 찾는다고 공부는 하는데, 영생을 가졌다고 하는데, 왜 나에게는 안 오느냐고 하신 거예요. 이게 육의 안목(眼目)으로 성경을 보는 자들에게 하는 일갈(一喝)인 거예요. 이게!

 

다시 시편 48편으로 갑니다. 거기서 다르싯의 배, 다르싯의 배라는 뜻이 장사하는 배란 뜻이에요. 지명이 아니라 장사하는 배예요. 다르싯!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다르싯의 배와 하느님의 성이 대조 되고 있죠? 다르싯의 배와 하느님의 성이 대조되고 있단 말예요. 하느님의 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되는 은혜의 나라, 하느님나라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하느님의 성! 그 성안에 들어가서만, 우리는 안전한 거거든요. 쉽게 말해서 새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란 말예요. 장사하는 배! 장사하는 성전! 인간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배는, 반드시 멸망할 거고, 하느님의 은혜의 배,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만이, 저주의 바다 위에 오롯하게 뜨게 될 것이라는 그런 말이에요. 예수께서 옛 성전에 들어가서, ‘너희는 이곳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가 다르싯의 배예요. 바벨론의 배! 그게 구약이란 말예요. 그게 묵시록에 가서, 멸망하는 거예요. 세상에 있는 게 아녜요. 교회 안에 다른 모양으로 있는, 가짜를 말하는 거예요. 그게 멸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은 단순히 세상과 성도의 이야기를 그려놓은 게 아니라,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서 기록을 해 놓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아무튼 성경에 등장하는 두 배는, 구약과 신약을 상징한다고 보시면 돼요. 구약 안에 갇혀서 그 배를 타면 죽어요. 예수라는 방주! 신약! 그 안에, 은혜 안에 들어가야 산다를 보여주는 거란 말이에요. 그걸 극명(克明)하게 대조해 낸 게 요나서죠?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구원의 말씀, 즉 복음을 갖고, 구원의 말씀, 살려내라고 말씀을 갖고 가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요나가 타고 가는 배는, 하느님의 말씀이, 제대로 된 말씀이 실린, 구원이 배여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가서 구원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요나가 어떻게 해요? 저런 자격이 없는 자들을 왜 구원해요? 이게 뭐요? 구약이죠? 그리고는 뭘 해요? 다르싯으로 가는 배를 타요 그게 뭐죠? 장사하는 배예요. 인간의 가능성과, 인간의 유익과, 인간의 존재 확장! 이런 거에 초점을 둔 다르싯의 배, 이걸 타는 거예요. 요거는 풍랑 맞아 망해야 되는 거죠?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럼 다른 배! 말씀을 가진 진짜 살리는 배가 또 나와야 되잖아요? 요나가 그 배로 등장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느님이 요나를 물속에 집어넣어서. 물속에, 스올에 빠뜨려 죽이는 거예요. 그래서 스올, 지옥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가 요나의 표적이라 그러죠? 예수님의 십자가를! 요나가 죽으므로 말미암아, 사흘 밤낮을, 스올! 지옥 속에 있다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도대체 구원 받을 이유가 없는 니느웨 사람들! 아시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가는데, 혓바닥을 철사로 뚫어서 개구리처럼 질질 끌고 갔던 사람들이라 그랬죠? 아시리아 사람들과 풍랑에 파선해야 될 자들이, 요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거예요.

 

이게 뭘 상징하는 거요? 방주요! 노아의 방주! 노아의 방주, 요 두 배가 등장하는 거예요. 한 배는 다르싯의 배, 장사하는 배! ‘저 놈들은 아무 자격 없어요.’ 이거. 이게 맞는 거 같아요. 세상에서 보면! 그런데 하느님이 아니라 그래요. 굳이 그를 빼서 죽여 버리고, 그가 자격 없다고 한 자들을 그 품에 넣어서, 방주처럼! 살려내요. 그래서 니느웨이가 회개하는 그림이 나오는 거요. 니느웨이가 그럼 다 구원 받았나? 이런 걸 우리가 미루어 추측할 필요는 없어요. 하느님은 교회, 성도에게 그냥 뭘 가르쳐주시는 것일 뿐이에요.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이 두 배의 이야기예요. 요나서가! 그러니까 그 인본의 배, 구약의 배는, 사람을 죽이는 배고, 은혜의 배, 구원의 방주는, 자격 없는 사람을 그냥 은혜로, 거저 살려내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사랑인 거예요. 그래서 노아의 방주 사건이 노아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더라로 시작하는 거예요. 은혜의 방주예요. 노아가 자격이 있어서 탄 게 아니라. 두 배!

다시 루가복음으로 갑니다. 예수님 앞에 두 배가 놓여 있어요.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성전이라 할 수 있죠.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 시몬의 배는 뭐라 그랬어요? 광야의 배, 사막의 배예요. 시므온의 배, 기갈의 배, 가뭄의 배에, 올라가시는 거예요. 생수가 가뭄의 배에 올라 가버리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해요. 물고기 잡아 오라는 거였죠?

그 때 베드로가 뭐라 그러죠?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는데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거기서 밤새도록이라고 번역이 된 어구가, 모든 밤 동안, 밤의 때에 이런 뜻이에요. 모든 밤! 단순히 하룻밤을 이야기하는 게 아녜요. ‘모든 밤, 어둠의 시간! 밤의 때에애썼다 그러죠. 애쓰다라는 단어도 코피아오라는 단어인데, 부여(賦與)된 수고, 부여된 노동이란 뜻인데,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 부여된 수고, 부여된 노동이 무엇을 뜻하죠? 율법이에요. 그래서 코피아오라는 단어는 율법적 수고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밤의 때에, 광야(廣野), 사막(砂漠), 말씀이 없는 시몬이란 존재가, ‘코피아오율법적 열심을 내놓았더니, 아무 것도 소득(所得)이 없더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이건 단순히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해도, 예수님이 명령하신 걸 그대로 순종하면,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는다는 이 이야기가 아녜요. 성경은 다 예수 이야기라 그랬잖아요? 그 상태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던지세요. 인간들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기 위함이에요. 그 때는 아직 교회에,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이 오시기 전이죠?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든 이해가 가면 안 돼요. 그래서 제자들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 때 시몬 베드로가 그 말씀을 듣고 나가서, 하느님의 뜻대로 뭔가를 성공적으로 성취해 내면 안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항상 말씀으로 오세요. 그리고 말씀을 하세요. 그건 하느님의 말씀인데, 성령을 받지 못한 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성취해내면 안 된다니까요. 그러니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아온 건, 성령이 오시기 전에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아 온 건, 우리보고 이렇게 하라고 교훈을 주기 위한 모델이 아니란 말예요. 성령을 받기 전에 인간들이, 인간들의 열심과 노력으로 어떤 실수를 해내는지 보라는 거예요. 오히려!

 

성경이 어려워요. 쉽지 않아요. 하느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린다니까요. 여러분 그럴 거예요. ‘왜 그렇게 어렵게 하겠어? 누구나 다 읽어서 이해하게 하겠지. 네가 틀린 거야!’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하느님은, 하느님의 백성 이외에, 누구도 못 알도록 막았다 그러셨어요. 하느님의 말씀을!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 이외에는, 이해가 안 가게 막아버렸어요. 감춰버렸어요. ‘무스테리온으로 막아버렸다니까요. 절대로 누구나 다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쓰지 않았어요. 생명나무 열매는, 불칼(火焰劍)로 막혀있다니까요. 성도만 이해한다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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