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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속량(redemption)의 이중성
작성자이정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5-03 조회수2,319 추천수0 반대(0) 신고

속량(贖良)이란 원조 아담과 인류가 함께 범한 원죄로 말미암아 죄악의 노예 신세가 된 인류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출(救出)해 내신 신비를 의미하는데, 흔히 마귀의 지배에서 인간을 속량하셨다고 표현한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실린 속량을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속량이란 오로지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음을 일관되게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속량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배치된다. 왜냐하면,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서에서 속량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중성에 대해 전해 주고 있는데, 갈라3,13-14에서는 속량의 축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얻어진다고 한다. 반면에 4,4-5에서는 율법 아래에 놓인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함으로써 속량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는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이란 그리스도와 하나의 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1코린6,17)  바오로의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만이 속량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속량의 원리에 대해 좀 더 깊이 숙고해 보면 속량의 이중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속량이란 하느님깨서 인간의 죄를 (원죄와 본죄 포함) 면제해 주신 신비를 뜻하는데, 그 신비의 핵심 원리는 그리스도와 인간의 영적 결합을 통해 이루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이 서로 분리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와 인간이 영적으로 결합된 상태에서,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를 면제해 주신 신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결합이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죄는 인간의 양심에 묻은 진홍빛 얼룩이어서(이사1,18)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는 피가 아니면 지워질 수 없다. 죄가 지워진다는 것은 죄에 대해 벌을 묻지 않는 '죄의 용서'가 아니라, 죄를 씻어내거나 제거 또는 면제를 뜻한다. 즉 죄의 용서와 죄의 제거와는 서로 다른 의미이다. 마치 흰옷에 묻은 잉크 자국은 특수 시료가 아니면 지울 수가 없듯이, 죄의 얼룩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직접 '속죄판' (로마3,25) 또는 인간의 영혼에 뿌려져야 가능하다. (레위17,11; 히브10,22; 로마8,3; 묵시7,24)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는 우리 전 인류의 죄를 씻어 없애는 연결고리가 없다. 그래서 죄의 면제는 그리스도가 수난 중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는 관계가 없다. 중요한 사실은 죄의 면제는 그리스도와 인간이 서로 분리된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결합된 상태에서, 우리 모든 영혼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야 죄가 씻겨지고 면제되었기 때문이다. (로마8,3ㄴ; 1코린1,30; 에페1,7; 히브10, 22)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면제해 주셨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왜곡이다.  그리스도와의 영적 결합을 위해서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졌는데,  그러면 그 원리는 무엇인가? 이는 하느님 속량의 위업에서 핵심 원리로써, 바오로 사도가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면제를 받습니다.”(콜로1,13-14)

 

즉 하느님께서는 사탄의 세계에서 살고있던 우리의 영혼을 구출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주셔서, 그리스도와 인간이 영적으로 결합을 이루게 되었고, 이 영적 결합을 통헤 속량 즉 죄의 면제를 이루신 것이다. (1코린1,30; 에페1,7) 바오로의 이 증언은 하느님의 위대한 속량 위업의 비밀을 드러낸 것인데, 우리에게는 감동과 충격의 복음이다. 성경을 통해 하느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 우리 인간으로서는 쉽게 믿기지 않는 신비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에 대해 표현은 안할 뿐이지 "귀신 씻나락 까먹는 헛소리"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성경에 기록된 신비이기에 우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성경 말씀을 뒷받침하는 예수님의 증언 메시지가 있어 소개한다.  천상의 책36권 중에 12권에 나오는 메시지이다.  

 

 

나는 어머니 태중에 잉태되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모든 영혼들을 나와 함께 나 자신의 생명으로 잉태하였고, 또한 그들 한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겪어야 할 고통과 죽음도 잉태하였다. 이처럼 모든 것을 곧 영혼들과 그들 각자가 치러야 할 고통과 죽음과 죄까지도 내 안에 모두 통합해 넣었으니 그것은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피조물을 보지 마시고 오직 저만 보십시오. 제 안에 모든 사람이 보이실 것입니다. 제가 그 모두를 위해 보속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만큼 많은 저의 고통을 드리겠습니다.” (천상의책12, 94, 2-4)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졌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콜로1,13), 성경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밝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천상의 책에서 예수님이 증언해 주신 바에 의하면,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옮겨진 시기는 그분이 어머니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시점이다. 즉 어머니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아기 예수님께로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을 옮겨주신 것이다. 그러니 이때 이중의 잉태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아기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태중에 그리고 인간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잉태된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짐으로써 우리의 죄, 고통과 죽음이 절로 그분께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로써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이사53,6)

 

그리고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거처를 마련하셨다. 하느님은 구약 시대 지성소에 안치된 계약 궤의 뚜껑인 속죄판 위에 정좌하시어, 1년에 한 번 속죄일(Yom Kippur)에 대 제사장을 만나주셨고, 대제사장으로 하여금 속죄판에 피를 뿌리게 하여 전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레위14,16-19) 그런데 히느님은 아기 예수님이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시자, 예수님의 몸 안에 속죄판을 내세우셨다고 성경은 가르쳐 준다. 로마서 325절에서 하느님은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다.”는 기록에서 속죄의 제물은 헬라어로 λαστήριον(Hilasterion) 으로써 속죄판이라는 뜻이다. 구약의 시대에 하느님이 성막의 지성소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신 같은 원리로 이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내세우신  속죄판에 하느님이 정좌하시어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질 때,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와서 살고 있던 모든 인간의 죄를 면제해 주셨다.  히브리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 졌다.”(히브10,22)

 

우리의 마음에 피가 뿌려졌다.’는 의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져 살고 있으면서(1코린1,30) 우리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졌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놓고 그리스도가 수난 중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 인간에게 뿌려져 우리의 죄가 씻어졌다고 해석을 하는 것은 속량의 원리에  대해 무지함을 드러내는 주장이다.  죄의 면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는 관계가 없다. 대신에 그리스도가 그분의 몸 안에서 살고있던 모든 인간의 영혼에 뿌려진 피로서 이루셨기 때문이다.

 

 

죄의 용서와 죄의 면제

죄의 용서(forgiveness of sins)는  죄에 대해 벌을 묻지 않음으로써 죄를 덮어주시는 것이고, 반면에 죄의 면제(remission of sins)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 의 피로 죄의 힘(power) 제거하시고, 처단하시고 씻어주신 신비를 의미한다. 구약 성경에는 죄의 용서는 있었으나, 죄의 면제는 없었다. 구약 성경에서 죄의 용서와 신약 성경의 죄의 면제는 피를 통해 이루셨지만(히브9,18),  특별히 죄의 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분의 피를 통해서 이루신 속량 위업이다.

 

신약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피라는 말이 32회 정도 나오는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인간의 죄를 씻으신 그분의 피와 수난 중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는 구분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그분의 죽음과 연결되지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뿌려진 피는 그분의 죽음과는 연결고리가 없고, 그분의 몸 안에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 인간의 영혼에 뿌려진 피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머니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시점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의 전 생애 동안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사셨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로 만드시어 지속적으로 속량해 주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속량은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그분이 어머니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된 시점부터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종말에가서 완성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속량은 점진적(progressive transformation)으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면제에 대한 신약 성경의 기록을 보자.

(1) 로마8,3: “... 그 육안에서 죄를 처단하셨다.” (2) 로마3,24 : “..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3) 1코린1,30 : “하느님은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게 해 주셨다.....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다.” (4) 2코린5,17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5) 에페1,7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면제(remission)를 받았습니다.” (6) 에페1,10 :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한데 모으는 계획이다.” (7) 콜로1,13-14 : “...우리를 당신의 아드님 나라로 옮겨 주시고...그 아드님 안에서 속량을 곧 죄의 면제(remission)를 받습니다.” (8) 히브10,22 :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 졌으며...”

 

위의 성경 구절들은 예외 없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살아 계실 때에 그분의 몸 안에서 인간의 죄를 면제해 주셨다고 전해준다. 한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에 대한 보속(satisfaction)을 대신 바치심으로 하느님은 우리 죄의 용서를, 그리고 동시에 그분의 죽음으로 화목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느님은 인간과의 원수 관계를 청산하시고(로마5,10) 벌의 용서까지 베푸셨다. (1요한2,2; 4,10)  구약 시대부터 하느님은 우리 죄의 용서와 벌의 용서를 달리 베푸셨기 때문이다. (탈출34,7)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전 인류의 원죄와 본죄를 포함한 모든 죄를 면제해 주셨는데, 이를 헬라어로 카리조마이(Charizomai)라고 한다. 이 조건 없는 속죄 은총의 특징은 (1)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인간의 죄를 거저 면제해 주셨다. (로마3,24-25)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베푸신 죄의 면제는  인간의 믿음과는 상관 없다.  로마3,25에서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진다.'고 하는데 이때의 믿음은 인간의 믿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가 구속의 힘이있다는 하느님의 신뢰를 뜻한다. (2) 이 신비는 전 우주적으로 이루신 속량 위업이다. 즉 이스라엘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를 믿든 믿지 않든, 죄인이든 아니든 구분하지 않으시고 속량을 베푸셨으며(1코린12,13; 갈라3,27-28; 콜로3,10-11),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신비이다. (에페2,11-22) 따라서 성령을 모독한 자를 제외하고는 죄를 면제받지 못한 인간은 없다. (마태12,31- 32)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2517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면제받고 새롭게 다시 태어난 재창조(regenerated)의 신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 신비가 바로 그리스도가 살아 계실 때에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속량 위업으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는 관계가 없다. 천상의 책에서 증언해 주신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그분의 몸 안에 품고 있던 인간을 낳으심으로써, 우리가 새롭게 태어났다. 즉 그리스도가 살아생전 인간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속적으로 속량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강생하시어 인간의 죄를 면제하시기 위해서 속죄 제물(로마3,25),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서 화목 제물(1요한2,2; 4,10)로 봉헌되셨는데, 우리말 성경은 두 제물을 구분하지 않고 속죄 제물로만 번역하고 있어서 혼란이 야기된다. (개신교 성경에서는 화목 제물로만 번역하고 있다.) 신약 성경의 언어인 헬라어 성경을 보면 속죄 제물은 λαστήριον(Hilasterion)으로, 화목 제물은 λασμό(Hilasmos)로 서로 달리 표현하고 있고, 영어 성경도 각각 expiationpropitiation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그렇게 달리 표현하는 데는 충분하고도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속죄 제물은 헬라어로 속죄판(Hilasterion)이라는 의미인데, 하느님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내세우신 속죄판에(로마3,25),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인간의 죄를 면제해 주신 메커니즘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분의 몸 안에서 영혼의 결합을 이룬 상태에서(1코린6,17), 그리스도의 몸 안에 내세우신 속죄판에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짐으로써 죄의 면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8,3; 콜로1,13-14; 1코린1,30; 에페1,7; 히브10,22) 특히 로마서 83절ㄴ에서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in the flesh) 죄를 면제하셨다고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위의 로마서 본문 구절 중에 그리스도가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이라는 말은 2코린5,21,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죄로 만드시어...’라는 기록과 서로 같은 의미이다. 즉 그리스도가 인간과 같은 죄인이 되었다는 은유적 표현인데,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로1,13-14을 상기하여야 한다. 즉 하느님이 인간의 속량을 위하여 과거, 현재 및 미래에 태어날 모든 영혼들까지 그리스도의 인성 안으로 옮겨주셨고, 죄인인 인간들이 그분 몸의 지체(肢體)가 되었음으로(1코린12,27),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죄인이 되셨다는 의미이다. 성경 본문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옮겨주시고(콜로1,13),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속죄판에 그분의 피를 뿌리시어(히브10,22) 그분 안에서 우리가 거저 속량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24-25)

  

참고도서 : 죄와벌그리고용서, 이정기, 교보퍼플(2021.5.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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