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일] 잠잠해져라. (마르4,35-4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20 조회수5,36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6월 20일 주일

[연중 제12주일잠잠해져라(마르4,35-41)

 

1독서<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욥기38,1.8-11)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다.

8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내가 구름을 그 옷으로먹구름을 그 포대기로 삼을 때,

10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11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할 때에 말이다.”

 

화답송 시편 107(106),23-24.25-26.28-29.30-31(◎ 참조)

◎ 주님을 찬송하여라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배를 타고 항해하던 이들큰 물에서 장사하던 이들그들은 주님의 업적을 보았네깊은 바다에서 그분의 기적을 보았네

○ 그분 말씀에 사나운 바람 일자커다란 파도가 높이 솟았네그들이 하늘로 솟았다가 바다 깊이 떨어지니그들 마음이 괴로움에 녹아내렸네

○ 곤경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역경에서 그들을 빼내 주셨네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히시니거친 파도 잔잔해졌네

○ 바다가 잠잠해져 기뻐하는 그들을원하는 항구로 그분은 이끄셨네주님께 감사하여라그 자애를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2독서<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토5,14-17)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복음<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마르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연중 제12주일 제1독서 (욥기38,1.8-11)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할 때에 말이다." (10~11)

 

'경계를'에 해당하는 '훅키'(huqqi; limits)의 원형 '호크'(hoq)는 '자르다', '그리다', '정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하카크'(haqaq)에서 유래하여 '규정되거나 제한된 것', '할당된 몫', '할당된 과업', '한정된 경계', '한계', '지정된 시간'등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여기서 창조때 하느님께서 바닷물의 양과 바다의 위치 등을 정확하게 규정해 놓았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계가 나름대로의 '자기 몫'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긋고'에 해당하는 '와에쉬보르'(waeshibor; and I fixed; and I brake up)의 원형 '샤바르'(shabar)가 원래 '깨뜨리다', '산산히 부숴뜨리다'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산산히 조각을 내듯이 세밀하게 경계를 그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빗장과 대문'이라는 용어는 당시 가장 견고한 것으로 여겨졌던 성문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성문은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성문에 빗장이 걸리면 어떤 사람도 출입할 수 없었다.

 

여기서는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을 엄격하게 통제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이 하느님께서 바다의 한계를 정해 땅과 분리하신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시는 것은 인간들을 향한 모든 일에 있어서도 하느님께서는 아주 세밀하게  계획하시고(욥기28,4) 역사(役事) 하신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서이다.

 

한편, 욥기 38장 11절은 욥기 38장 8절에서부터 언급되었던, 하느님께서 바다와 땅을 분리하고 경계를 그었음을 나타내는 내용이 결론이며, 동시에 바다가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바다가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명령 때문이다.

 

욥기 38장 11절에서 '~할 때에 말이다'에 해당하는 '와오마르'(waomar;and said)의  원형 '아마르'(amar)의 기본적인 뜻은 '말하다'이다.

 

여기서 이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단어의 주어와 그 말의 내용이 중요하다.

 

본문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피조물인 바다도 이 말씀에 복종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여기서  '도도하다는 것'은 파도가 자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넘쳐흐르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 이상은 안된다'는 말과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말은 의미상으로 같은 말인데, 반복을 통해 그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출렁이는 파도, 그리고 그것의 한계를 정하시는 하느님의 역사하심, 그것에 복종하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욥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모든 인간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서 교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여기서 바다를 향해 '너희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욥과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에게 이제 더 이상 무익한 변론이나 피조물로서 자신의 한계를 간과하고, 함부로 자신의 의(義)를 내세우거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뜻에 대해 판단하는 행동을 중지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연중 제12주일 복음(마르4,35~41)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39~41)

 

'꾸짖으시고'로 번역된 '에페티메센'(epetimesen; rebuked)는 예수님을 주어로 하는 경우에 베드로를 향해서(마르8,33), 더러운 영을 향해서(마르1,25; 9,25), 열병에 대해서(루카4,39), 그리고 여기서는 바람을 향해 사용되었다.

 

이 모든 경우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로서 인간과 영계와 질병에 대해서까지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또한 사탄의 권세가 미치는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상 구원 사업을 막으려고 했는데 그를 꾸짖으셨으며질병과 부마를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악령들을 꾸짖으셨고게리사인들의 지방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행보를 막는 풍랑을 꾸짖으셨다.

 

이처럼 '꾸짖는 일'은 예수님의 개인적이거나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습관적으로 표출된 감정 폭발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일들을 효과적으로 이루시기 위해서 행하신권위 있는 활동의 일종이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이교도들처럼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해 희생 제사를 바치며 달래거나 겁을 주는 방법이 아닌권위 있는 말씀으로 꾸짖는 방법을 이용하셨다.

 

한편, '바람'과 '호수'는 특별히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었다.

 

여기서 '바람'과 '호수'가 동시에 등장하는 점이나 마르코 복음 4장 39절 후반절에서 호수더러 잠잠하라고 했는데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지는 점을 보면 그렇다.

 

구약 성경에서 '호수또는 '바다'는 욥기 38장 8~11예레미야서 5장 22절에서 태고의 혼돈을 나타내며시편 69장 2절이하와 이사야서 43장 2절에서는 의인이 당하는 시련을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예수님께서 당신 자신과 당신이 타신 배를 삼키고 그들을 죽이려 하는 호수를 굴복시키신 것은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계략을 깨뜨리셨다는 사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39절의 '조용히 하여라'에 해당하는 '페피모소'(pephimoso; be still)의 원형 '피모오'(phimoo)는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다', '묵상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명령 분사 '페피모소'(pephimoso)는 그리스 문학의 이적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령 제압을 위한 문구로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나 루카가 기록하지 않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예수님 활동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부르짖음을 듣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는 역사는 오로지 주 하느님께 돌려지는 구약적 배경을 갖는다(시편107,29.30).

 

그리고 마르코 복음 4장 41절의 '복종하는가?'에 해당하는 '휘파쿠에이'(hypakouei; obey)의 원형은 파쿠오'(hypakouo)인데여기서는 현재 능동태 단수 3인칭으로 쓰였고어떤 곳에서는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형인 '휘파쿠우신'(hypakouousin)이 쓰였다.

 

복수로 쓰인 것은 '바람과 호수'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여 풍랑의 원인을 여러가지 자연적인 요소들로 간주했기 때문이고단수로 쓰인 것은 풍랑의 원인을 한 위격 또는 원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자연은 본래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달리 흉폭해져서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데이것은 하느님의 허락하에 사탄이 자연을 악용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타락한 자연사탄의 세력에 의해 조종받는 자연도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