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2코린5,14-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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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2-03-27 | 조회수1,47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2년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독서(2코린5,14-21)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 율법(律法), 그 옛 계약(契約)으로는 죄(罪)가 드러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 그리고 세상의 것을 얻어내기 위해, 곧 내 뜻, 소원, 의로움, 영광을 위해 신앙을 살았던,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죄(罪)의 옛 사람인 우리를 품으시고 죽으심이다. 그렇게 내가 죽은 것이다. 율법(律法,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내가 죽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새 사람이 된 것이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옛 계약의 사람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위해 살라는 것이다. 곧 율법(제사와 윤리)의 삶, 신앙(信仰)이 아닌 용서(容恕)와 자유(自由), 안식(安息)의 삶을 주신 하느님, 그리스도께 감사(感謝), 영광(榮光)을 드리는 예배(禮拜)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요한4,23 참조) 아직 깨닫지 못한, 모르는 이웃들에게 새 계약(契約)의 그리스도를 주어 함께 기쁨의 신앙(信仰)을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큰 계명(誡命)의 이웃사랑이다. (요한10,16)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공동번역-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세속적인 표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세속적인 표준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 이제 제사(祭祀)와 윤리(倫理)의 의(義)로 세상의 것을 주시는, 오해(誤解)된 그리스도로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다, 곧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피의 새 계약, 그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죄(罪)가 다 씻겨 졌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신다. 그렇게 용서(容恕)하신 것이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 하느님과의 화해(和解)? 어떻게 하는가....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허무시기 위해 당신 아드님을 대속(代贖)의 제물(祭物)로 보내셔서 십자가(十字架)에 죽이심으로 새 계약을 이루셨고, 죄인(罪人)이였던 우리(나)가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해 주심에 ~‘아멘’, ~‘믿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참 진리(眞理)요 참 사랑입니다.’하며 그 ‘바보사랑의 하느님’께 감탄(感歎)하는 것이다. 복음(루카15,1-3.29-3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前)에 유산(有産)을 달라는 못된, 죽을죄인(罪人)인 이들이다. 그런데 그 아들의 뜻을 들어준 아버지, 왜?- 아버지는 아들이 그 유산으로 개고생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곧 고난(苦難), 시련(試鍊)의 삶을 통해, 못된 자신을 깨닫고(죽이고) 돌아올(회개)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뜻대로 아들은 돌아왔다. 매일 가슴 조리며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버지는 기뻐하며 그 못된 아들을 받아 품는다. 그러나 큰 아들(율법)은 용납(容納)이 안 된다. 그래서~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 율법(律法)을 열심히 지킨 큰 아들이다. 곧 ‘자기 의(義)를 위한 삶’은 불평(不平)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속(代贖), 그 사랑으로 받는 용서, 의, 자유, 쉼, 안식이 없기 때문이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 송아지(소)는 하느님을 뜻한다. (어린양-예수님, 비둘기-성령) 곧 죄를 짓고 돌아온(회개) 작은 아들을 당신과 함께 의롭게 하시기 위해 아버지(하느님) 당신이 손수 속죄(贖罪) 제물(祭物)이 되신 것이다.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로는 절대 아버지와 하나, 한 몸이 될 수 없다. 하느님의 의로움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그리스도 안에서 죄(罪)의 옛 사람을 죽이셨고, 그리스도로 새 것, 새 사람으로 영원히 살리신, 되찾으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율법(제사와 윤리)의 옛 사람으로 돌아간다. 곧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의로움보다 내 뜻, 소원을 위한 열심(熱心), 의(義)를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오늘, 지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친다.” 제발 당신을 떠나지 말라고, 제발 돌아오라고, 바보 사랑이......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을 통해, 싹트는 만물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다그치시는 그리스도의 바보 사랑을 보고 듣게 하소서. 저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소서. 그리하여 그 바보사랑을 저희도 할수 있도록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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