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6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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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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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19 | 조회수197 | 추천수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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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전구 교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고장 난 전구만 바꾸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구를 바꾸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기가 흐르는 길, ‘배선’을 먼저 점검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전구를 갈아 끼워도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불은 켜지지 않습니다. 천장을 열고, 도면을 살피고, 전기가 끊긴 부분을 고친 뒤에야 마침내 불이 환히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빛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형식이나 노력만이 아니라, 그 빛이 흐를 수 있는 내면의 통로를 먼저 고치는 일, 즉 마음의 배선 작업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알기 쉬운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열매 맺기를 바라면 먼저 씨를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도 먼저 가진 것을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잘 모르는 나그네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환대하였습니다. 손님들이 피곤을 풀 수 있도록 목욕물을 제공했습니다. 아내 사라에게 음식을 마련하도록 하였습니다. 종들에게 튼실한 송아지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부모님처럼,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환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가장 헐벗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가난한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3,500년 전에 이미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환대를 받았던 분은 사실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아브라함에게 100세가 넘은 아브라함에게 내년에는 늙은 아내가 아이를 출산할 것이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느님 사람의 축복은 현실이 되어, 아브라함은 100세가 넘어서 아이를 얻었습니다. 성서의 일관된 가르침이 있습니다. 선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아브라함의 환대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자세였습니다. 그는 “혹시 이 낯선 사람 안에 하느님이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합니다. 그 마음이 바로 전기가 흐르는 배선처럼, 하느님의 은총이 흘러들 수 있는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마르타는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도,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마르타의 분주함은 전구를 바꾸는 일 같고, 마리아의 경청은 전기가 흐르는 길을 마련하는 일 같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우리도 마르타처럼 많은 일을 하느라 지치지만, 정작 하느님의 은총이 흐를 수 있는 내면의 통로는 닫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교회를 위해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고난을 감수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를 위한 희생은 마치 어두운 천장을 뚫고 배선을 고치는 일과 같습니다. 때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야 빛이 들어옵니다. 복음의 진리는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농민 주일이기도 합니다. 농부는 아무리 좋은 종자를 가지고 있어도, 밭을 먼저 갈아엎고 씨를 뿌린 뒤에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셔야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하고, 그분의 은총이 흐를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성당의 불이 환히 켜지기 위해 배선을 고쳐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환히 빛나기 위해서는 마음의 전선을 점검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낯선 이 안에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바오로처럼 교회를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몸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빛을 받아 세상에 비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빛은 단순한 전구의 불빛이 아니라, 사랑과 환대, 경청과 인내, 그리고 희생 속에 피어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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