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5년을 살며 신학공부를 했다. 그동안 나는 편하고 쉬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나도 나중에 편하고 쉬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타인의 요구에 응답해야 할 사제가 까다로우면 어떤 사람이 쉽게 찾아오겠는가? 어느 학위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신학석사 학위를 받기 위한 종합시험을 보았다. 이 시험은 구두로 90분간 네 명의 시험관한테 질문을 받고 답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학생에게 시험관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곧 학생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험관 대신 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시험관 한 사람을 포함시켜 시험을 치르는 학생에게 심리적인 편안함을 보장해 주는 장치다.
학생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은 이런 제도뿐 아니라 교수님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다. 한 교수 신부님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험 며칠 전에 그분을 찾아가 그동안 내가 준비한 것을 이야기했고, 몇 가지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을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그 신부님은 나에게 시험관과 좋은 토론을 한다고 생각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시험이란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시험 전날 맥주를 몇 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면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한다. 쉽고 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한다. 그러나 까다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어찌할 바 모르게 하고 상황을 늘 어렵게 만든다. 지식의 열쇠를 가진 사람, 곧 권위를 가진 사람이 편하게 대해준다면 많은 사람이 행복할 것이다.
김정대 신부(예수회·인천 `삶이 보이는 창`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