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복음묵상]왜, 그렇게 고백하는가?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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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6-10-19 | 조회수857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왜, 그렇게 고백하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불행을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간 즈가리아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예언자들을 죽인 것은 조상들인데, 왜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아벨의 피는 구약 최초의 살인 사건을 상징하고, 즈가리야의 피는 구약 최후의 살인 사건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아벨의 피부터 즈가리야의 피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모든 죄를 예수님 세대의 사람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말씀인데, 왜 직접 그 죄를 짓지 아니한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일까요? 이러한 경우는 유다인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그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인데, 왜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그분께서 죽으셔야만 했다고 고백할까요? 그분을 못 박은 것은 로마 군인인데, 왜 우리는 우리가 그분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다고 고백할까요? 이처럼 우리가 직접 죄를 지은 것이 아닌데, 성서는 자꾸 서로의 죄가 무관하지 않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직접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당시 시대의 사람들에게 과거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말은 다른 의미가 아닙니다. 바로, 옛날 지었던 모든 과오들, 모든 죄들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렇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면서 죄가 죄를 낳게 하는 상황이 있음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이라는 영성가는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칠층산”에서 자신의 동생이 2차 세계 대전에서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세상의 악이 결코 자신이 그동안 지었던 죄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깊이 있게 통찰합니다. 직접 자기가 그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지었던 모든 죄들이 전쟁이라는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상황과 깊이 있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서로의 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신학적으로 “세상의 죄”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죄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셨고, 우리가 그분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다고 하는 고백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탐욕을 조금 덜 부렸더라면, 그분은 덜 사무쳤을 것이고, 우리가 조금 더 인내했더라면, 그분은 덜 아프셨을 것이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무고한 예수님을 죽였던 그들처럼 우리 역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로 살인을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 마음에 못을 박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진리를 멀리하고, 정의를 외면하고, 사랑을 짓밟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죽이는 셈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이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 지금 당신을 죽이고 있는 모든 죄, 앞으로 미래에 많은 사람들이 어김없이 반복할 죄, 곧, “세상의 죄”를 아시고, 그 모든 죄들을 아버지에 대한 순종으로 이기셨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시는 그 마지막 순간의 말씀은 바로 이를 알려주십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가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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