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음을 다하고'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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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06-11-04 | 조회수63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마음을 다하고>(마르 12, 28-34)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가 사랑할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자기의 모든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매일 매일 삶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불행은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사랑할 대상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싶은 데 그럴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거이다. 아무튼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럴만한 분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뿐시다. 그럼 온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인간적인 일들을 서로 주고 받지만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간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주고 받는다. 인간은 인간적인 관계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또 아무리 인간 관계가 좋더라도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가 없다. 인간은 인간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따라서 원형이신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있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인간은 늘 신 즉 절대자와의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라는 말은 바로 우리가 섬겨야할 분은 오직 한 분 즉 "야훼 하느님뿐이시다."라는 것이다. 야훼 하느님이외의 그 어떤 다른 신도 하느님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관계를 맺어야 할 하느님은 오직 "야훼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라는 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도구는 "마음, 영혼, 정신, 힘"이라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 수단들이며 우리는 이것들을 이용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만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매번 ".....을 다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다하라"는 말은 어떤 부분적으로가 아닌 전부 모든 것을 다 동원하라는 것이다.
"마음, 영혼, 정신, 힘"을 전부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순서에 따라서 하나 하나 묵상하도록 하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 그들은 나를 헛되이 에배하며 사람의 게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마태 15, 7- 9) 사랑은 머리로 또는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랑은 마음으로 한다. 가슴으로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이지 머리가 지끈 지끈 거리지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를 마음으로 사랑하셨다.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예수 성심"이라고 하고, 마리아의 마음을 "마리아의 성심"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셔야 할 분이시다. 우리가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 머리로만 혹은 교리로만 계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 안에 당신 사랑을 부어 주셨다. 하느님은 우리를 마음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괴로워할 때 아파하시고 병들고 고통을 겪을 때 함께 괴로워하시고 아파하신다.
이 세상에 사랑한다는 사람이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할 때만이 정말로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 사랑은 말로만이 아닌 마음으로 가슴으로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도 마음으로 사랑해 보라. 그러면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은 서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또 서로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운 사랑이요, 서글픈 사랑이다. 하느님과 나와의 사랑은 하나되는 사랑이요, 서로 나누는 사랑이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을 사랑할 때만이 우리의 마음은 행복을 맛 볼 수 있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고 기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목숨을 다하고
육체는 영혼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영혼을 섬겨야 한다. 육체는 일정 기간동안뿐이지만 영혼은 영원하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신체기능은 영혼이 늘 하느님을 찬미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봉사해야 한다. 영혼에 해를 끼치는 육체적인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을 가리켜 영성생활이라고 한다. 즉 육적인 본능을 쫓아 사는 삶을 육적인 삶이라면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삶을 사는 생활을 영성생활이라고 한다.
생각을 다하고
정신을 갖고 있는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위대한 점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빠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표현했다. 생각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선물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이 정신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가? 즉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본능대로 살아가는 짐승들과는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이 위대한 기능을 누구를 위해서 또 무엇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가? 오늘 복음은 그 해답을 가르쳐 준다. 즉 "네 온 정신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생각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사랑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은 오로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에만 사용되어져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모습이 변해간다. 과학자는 끊임없이 무엇을 발명하는 것을 생각하는 새로운 것을 발명해낸다. 남을 죽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차 살인자로 변해간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할 것만 생각한다. 바둑 두는 사람은 바둑판만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내 모습이 변해져 간다.
우리의 정신은 하느님만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사실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앉아서나 서서나 늘 사랑하는 사람만을 생각한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가?
힘을 다하여
한번도 하느님이 주신 위대한 힘을 주신 하느님을 위해 한번도 최선을 다해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 나서게 될 때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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