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8)우연이라고 하기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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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양귀 | 작성일2006-11-09 | 조회수1,014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내 나이 33세 되던 어느날에 있었던 내 신앙 체험입니다
예수님 나이 33세 였을 땐 성부 하느님 아버지로 부터 주신 과업을 모두 완성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그 나이에~~~이르럿을때에야 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계기가 있어 정신을 차리고 내안에 있는 나를 만나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공부를 지금처럼 할 기회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사실 부끄럽지만 저역시 그때부터 도대체 성서가 무엇이 씌여있는가?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서를 다 보고난 다음 약 한 일주일을 문밖 출입을 삼가하고 내가 어떤 의식이 있었던 순간을 찾으니 3살때 기억이 떠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육이오 전쟁통에 어느 다리밑에서 밑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 곳 옆에 멍석을 깔고 막내이모가 밥을 먹여주는데 깍뚜기만 주니까 고기를 달라고 울던 기억이 나기 시작해서.....
<아~ 이것부터 내가 지은 죄구나~ >하고 그 죄부터 회계하기 시작해서 그 당시 33세때 까지 있었던 모든 죄를 하느님께 자세하게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출근만 하면 시작해서 띵똥하고 퇴근할 때 까지 대학노트를 10권 정도 사다놓고 계속 끈질기게 써 내려 갔습니다 손가락이 아플정도로 (요즈음은 콤이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쓰고 쓰고 또 쓰고 진솔하게 쓰다 보니 눈물이 넘 나와 나는 그때 부터 울보가 되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통해 나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외짝인 남편을 상대방인 남편을 받아 드리고 시댁을 이해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 후 성당에 봉사하는 것이 기뻐서 레지오에 입단하고 성당반장이 되고 동네 반장이 되어 교회와 사회에 기쁘게 봉사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교하는 것이 즐겁기만 하고 행복하기만 했는데..... 계속 하느님은 더 어려운 부탁을 하시기도 합니다
일주일을 진솔하게 고백을 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왠 눈물이 그리도 많이 흐를까요?
차라리 수녀원에 가서 수녀님이 되어 살았더라면 이 고생을 안하고 하느님 생각만 하고 더 순수하게 걱정없이 살텐데......이게 무슨 꼴인가?
시댁에서는 목사님 되었다고 그 먼거리에 있는 개신교로 오라하고.... 남편은 광주사태로 그 좋은 직장 다니다가 갑자기 그만 두어야 했고 (나중에 3년후에 다시 복직되었지만 그때는 참으로 암담했음)...... 회계를 해 나가다가도 원망도 하기도 했고 후회하기도 하면서....
그동안 고백소에 가서 제한된 시간에 고해성사를 본것 보다도 더 많이 행복했었습니다
예수님께 그동안 모든것을 자세히 다 고백하고 나니 나는 그제야 내가 진짜 숨을 쉬고 살것 같았습니다
예수님 이젠 죽어도 두렵거나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큰집 개신교도 가기 싫어요~ 차라리 나 지금 천주교 신자로 죽게 해 주세요~ 언제라도 당신이 부르시더라도 안심하고 기꺼이 당신 품속으로 가겠습니다 ~ 이젠 다 고백했습니다 하고
멍하니 그냥 앉아 있는데....
쿵하고 큰 소리가 난후에 말씀이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예수님 말씀인지 잘 몰랐습니다)
<비향카 데레사야~ 니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내가 다 들어주마~ 걱정하지 마라~~~> 분명하게 들려오는 말씀은 곧 예수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서 옷을 잘 챙겨 입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 시간이 촉박하다 어서 오너라~나 먼저 간다>
구름같은 꼬리형체를 남기고 바람처럼 쌩하니 나가시는 그분은 분명 예수님 이심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고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해도 분명한것은 절대로 꿈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바빠 졌습니다 정신없이 옷만 챙겨 입고 세수도 못한채 막 뛰었습니다 예수님이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시니까 .... 나도 모르게 옷을 빨리 입으려다가 (넘어잘뻔 할 정도로)
나도 정말 정신없이 빠르게 쫒아 가서 아이들 바로 뒤에 내가 서 있었는데 보니까 거기가 서교동 성당이었고 김몽은 신부님이 첫영성체를 아이들에게 영세성사를 주려고 그 바로 그 순간에~ <성부와 성자와~~~~ >성호경을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내마음 깊은 속에 남은 내 상처까지도 치료 해 주시려고 오신 <감사하신 예수님 >진정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기적이란 말입니까 ???
나는 그때 그 아이들이 하는 그대로 신부님이 하신 그대로 33살 이지만 일곱살 고운 그 어린 소녀시절로 돌아 간 그 상테에서 첫영성체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때에 황혼이 뉘엇뉘엇 지고 있는 오후시간이라는 것을 그순간에야 정신이 차려져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일곱살 그 아픈 상처때문에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 광주 남동성당 본당신부님을 찾아가서 고백실에서도 나도모르게
<신부님 나 첫영성체같은 영세한번 더 받으면 안될까요?>
나 영세한번만 더 받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물었지만 신부님은 이런 내 사정을 알리 없으니.... 영세는 평생에 한번밖에는 못한다고~~~ 영세는 평생에 한번밖에는 못한다고~~~
내 잘 알았습니다 하고 나자신도 머언 시간속에 그런 생각조차도 다 잊어 버리고 살았는데 .... 예수님은 잊지 않으시고 제 아픈 상처를 싸메 주시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 시간에 어린이들 첫영성체 세례주는 의식이 있었는지 전여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이것이 신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소설을 쓸 정도로 영리하지도 못합니다
어려서 부터 나는 고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수성가하신 아버지 어머니의 고생담을 외할머니랑 나누시는 그런 체험담만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절약하고 절제하는 것은 기본으로 배웠고 이 분들의 정신을 신앙으로 알고 무럭무럭 잘 자라다가
일곱살때 동네친구를 따라 목포 경동성당 놀이터에서 놀다가 첫영성체 준비하고 있었던 그 친구들이 가는 그대로 성당교리반에무조건 따라 들어가서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부모님들이 신자가 아니라고 그 대열에서 지금 말로 표현하자면 왕따를 당하는 첫 상처를 심하게 받고
그 괴로움과 그 고통을 눈물로 결국 나는 영세를 못 받고 홀로 성당 계단밑에 앉아 어린 마음에 하느님이 나를 버린것 같아 엉엉 울면서 그 당시부터 내 기도는 더 깊어 갔는지 모릅니다 성체를 모시지는 못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고 있어도 쌍둥이네 자매가 부르기만 하면 얼른 일어나서 새벽미사에 나가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쁜 묵주랑 촛불~ 미사보~ 성체를 모시는~ 그것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아무런 철이 없을 때라서 하느님이 이끄시는 대로 나도 모르게 이럭저럭 살다보니 이젠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걱정이 있다가도 그때 들려주신 그 말씀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용기를 내어 기쁨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는 이 시간도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져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이 몸을 맡기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 갈것입니다
하느님안에서 위로 받으며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나의 최고의 희망입니다 자자 손손 대대로 하느님을 잘 믿고 살아가는 후손이 되라고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두손을 모아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마도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모두도 행복하시라고 오늘은 이 글을 이 기쁨을 나누어 드립니다
<하느님안에 무조건 행복하십시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찬미예수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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