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룸코라는 연수를 받던 중 연수원에 있는 개에게 물려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병원에서 돌아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처난 양미간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고, 오른쪽 눈꺼풀에 실 같은 상처가 있었다. 개 이빨이 눈꺼풀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서 미간에 상처를 냈던 것이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0.1밀리미터만 눈 안쪽으로 지나갔더라면 영락없이 눈을 다쳤을 것이다. 나는 개에게 물린 것이 속상하고 화가 나면서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감사의 마음이 일어났다. 눈을 다쳐 실명할 수 있었는데도 양미간만 다쳤을 뿐 눈을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전에는 건강한 두 눈에 감사하지 못했지만 그후에는 멀쩡한 눈에 감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개 불행해지기 전에는 감사하지 않다가 불행에서 헤쳐 나오면 감사드린다. 내가 만일 하느님이라면 건강한 사람에게 불치의 중병을 걸리게 하거나 평화로운 사람에게 고민거리를 준 다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들은 후 치유해 주고 해결해 줌으로써 감사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와 같이 하지 않으신다.
지금 내 몸이 건강하다면, 큰 문제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 자체에 감사드려야 하지 않을까? 불시에 병이 찾아오고 우환이 닥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할 수있다면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느님은 그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기에.
오늘 복음에서 한나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수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처럼 우리도 감사하며 살자.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