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을 하면서 궁금한 것이 있어 K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은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보고 계셨다. 운동을 무척 좋아하시는 신부님이라 ‘때를 잘못 맞췄구나’ 생각하며 “나중에 올게요”라는 말을 하려는데, 신부님은 텔레비전을 끄고 별 것도 아닌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연세 많으신 신부님이 아직 종신서원도 안 한 어린 수녀를 존중해 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필요한 것이 있어 신부님께 청하러 가면 “그렇게 해봐”가 대답이셨다. 그래서 어떤 땐 “신부님, 이런저런 것들이 필요한데요. 돈은 얼마가 듭니다” 하고는 내가 대답으로 “그렇게 해봐” 하면, 같이 한참 웃고는 역시 “그렇게 해봐” 하신다. 늘 우리가 하는 일을 믿어주셨기에 청하러 갈 땐 오히려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꼭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결정해서 가게 되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긴장을 잘하는 나는 실수도 많고 덤벙대기도 잘했는데 실수를 웃음으로 넘겨주셔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신부님과 농담도 곧잘 하면서 마음 편하게 소임을 할 수 있었다. 가끔 미사 때 대제병을 놓지 않으면 우리만 알 수 있게 성반을 휙 돌리신다든가, 우리의 실수를 교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돌려 말씀하셨기 때문에 늘 고맙고 아버지같이 기댈 수 있었다. 우리에겐 그렇게 후하게 해주시면서도 당신은 손수 폐지를 잘라 메모지로 쓰시고, 재활용 화장지를 사용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신부님과 수녀들이 회합을 하면 신부님이 농담을 잘하셨으므로 내내 웃다가 온다. 그런데도 모든 성당 일이 잘 돌아갔다. 제의실에 들어오시면 먼저 우리를 웃겨놓고 제의를 입으신다. 신부님이 다른 본당으로 이동되시던 날, 본당 회장님께서 인사 말씀 중에 “우리 신부님은 돈 얘기를 한번도 하신 적이 없는데도 본당 살림에 돈이 모자란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셨던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신부님은 우리 삶 안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임을 깨우쳐 주신 예수님처럼 신부님도 팍팍한 일상의 건조함을 웃음과 여유와 너그러움,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아낄 줄 아는 큰마음으로 헤아려 준 분이셨다. 지금은 천당에서 나를 보시고 ‘작은 눈 가지고 뭐에 쓰노?’ 하시며 놀리실 것 같다.
문화순 수녀(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