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에 친구들이 식사하러 왔을 때 창피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며칠 전에 내 동생이 왔을 때 먹고 남았던 고급 포도주 반 병을 그들에게 대접했습니다. 그들이 간 후에 나는 그들이 남긴 포도주를 맛보았습니다. 맙소사, 그 포도주는 이미 식초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스테픈 버니, 「놀라운 변화」 중에서)
주님께서 내 두 눈에 손을 대시고 멀었던 내 시야를 열어주셨던 은혜로운 기억이 떠오릅니다. 유년시절의 어둡고 가난한 기억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내게 그 시절이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성소로 나를 부르시고 준비시키시는 과정이었음을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소중한 만남을 통하여 사람과 세상과 역사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셨던 손길은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빈민사목에 투신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삶의 조건을 복음화하겠다고 시작했던 과정을 통하여 결국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부족한 나 자신의 복음화였다는 사실도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모든 기억도 지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 있는 내게는 냉장고에 보관된 먹다 남은 포도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다시 내 두 눈에 손을 얹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새로운 걸음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나에게 다시 손을 얹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지금 여기서 똑똑히 볼 수 없습니다. 마음 깊이에 ‘다시 내 두 눈에 손을 얹어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메아리처럼 울립니다. “어둠도 당신께는 어둡지 않고 밤도 낮처럼 빛납니다”(시편 139,12).
김홍일 신부(성공회 · 나눔의 집 협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