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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사랑의 세 박자 리듬/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8-05 조회수604 추천수4 반대(0) 신고


 
 

 

* 예수님의 사랑의 세 박자 리듬 *
 

신약성서에서 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셨던 장면을 여러 번에 걸쳐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자주 측은한 마음을 일게 했으며

이러한 측은한 마음은 느낌 자체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상황들을 애써 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거기 모여든 많은 군중을 보시자 측은 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여기에는 세 가지 리듬이 항상 배어 있는 데

예수님께서 삶을 통해 보여 주신 사랑의 왈츠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셨고, 그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드셨고

그 다음에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보셨고... 측은한 마음이 드셨고... 치유하셨습니다.

보고... 불평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밟는

세 가지 리듬과는 달리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자주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측은한 마음

곧, 연민과 동정심이 생기셨습니다.

이것은 군중을 향한 측은지심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처지에 있던지 상관없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행위를 취하셨습니다.

배고픔을 느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군중들이 측은해 보이는 구나.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기가 안됐구나.

배고파 쓰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셨으며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신체적으로 장애자인 어떤 사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깊이 동정하시며 응답하셨습니다.

“소경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자

그들은 곧 눈을 뜨게 되었다.”

영적으로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예수님은 어떤 조치를 취하십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

슬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과 마주치셨는데

죽은 사람은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었다.

주께서는 그 과부를 보셨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마라’ 고 위로하시며

그 젊은이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먹이시고, 치유하시며, 가르치시고 살리셨습니다.

측은지심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측은지심은 경건심으로부터 일어났으며 

곧,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열정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바꾸어 더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은 당신께서 말씀하신 데로 친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종교는 단지 “존재” 하는 것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그 이전에 “느낌”이 선행합니다.

보시고 감동을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감동을 시키셨으며

당신 존재에 관한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둘-셋이라는 리듬을

생활로서 증거하며 살아갑니다.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고 도와 줍니다.

마더 데레사는 삶을 통해서 뛰어난 모범을 보여준 사람 가운데 하나인데

이와 함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녀와 같이 삶으로 실천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추위에 떨며 오갈 때 없는 사람을 보고,

한 소년이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담요를 갖다 주었고

이를 본 다른 사람들도 동참하였습니다. 

낙태를 시키려고 하는 딱한 처지에 처해 있는 미혼모를 보고,

어떤 여인이 그녀와 태아에 대해 불쌍한 마음이 들었고

자신의 집에 묵게 함으로써 아이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한 흑인 사제가 버려진 어린 아이들을 보고,

외로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 둘 가운데 한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이웃에 있는 사람들이 그가 행동한 모습을 보며 “그분이 그런 일을 하는 데,

우리가 가만  있을 수 있는가!”

우리 모두는 이런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많은 길이 열려져 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께서 제시하신 길을

각자가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지만

그 상태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보고 느끼기는 하는 데 다음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말장난에 그치고 만다).

기아에 허덕이며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신음하는 희생자들, 자연의 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내면이 황폐하게 된 영혼들, 도시의 뒷골목에서 자신을 파괴하는 약물 중독자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우리는 기아에 허덕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며

아무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고통에 눌리어 주저앉아 있을 때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한다고 한들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며

의심에 차있을 때(또는 확신을 갖지 못할 때),

예수님께서 항상 해오셨던 데로 하라고 하시며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실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아마 예수님은 조용히 마음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너는 이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무언가를 할 수 있단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있는 모든 나병 환자들을 치유하시지 못했습니다.

당신께서 지상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인도에서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시지 못했고

골란고원에서 전쟁을 멈추지 못했으며

일본에서 지진 희생자들을 위로하시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을 하셨고

그 다음에 인간으로서 하실 수 있는 한 최대한 도로 집 없는 사람,

미혼모에게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에게 당신께서 지니신 연민의 정을

널리 퍼트리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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