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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먹보요 술꾼 (루카 7,31-3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18 조회수1,761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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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먹보요 술꾼 (루카 7,31-35)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하느님의 집인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고 기초라며,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하다고 한다. (1티모 3,14-16)
사랑하는 그대여, 14 나는 그대에게 곧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이 글을 씁니다.
15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16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당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시어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분께서는  영광 속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3-4.5-6(◎ 2ㄱ)
◎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 주님을 찬송하리라. 올곧은 이들의 모임, 그 집회에서, 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 그분 업적은 엄위롭고 존귀하네. 그분 의로움은 영원히 이어지네.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
○ 당신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시고,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시네. 위대하신 그 일들 당신 백성에게 알리시고, 민족들의 소유를 그들에게 주셨네. ◎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보고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하는 세태를 나무라신다. (루카 7,31-3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제1독서 (1티모3,14-16)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15)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 전서 3장 15절에서 자신의 에페소 방문이 늦어지게 될 경우, 티모테오로 하여금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본 서간을 집필한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티모테오 전서 3장 15절은 티모테오 전서의 기록 동기를 밝히고 있다는 점과는 별도로 사도 바오로의 교회관이 잘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사목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교회관을 세 가지로 피력하고 있는데, 첫째는 하느님의 집이요, 둘째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요, 셋째는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이다.

 

우선 사도 바오로가 첫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교회관은 '하느님의 집' ('오이코 테우'; oiko theu)으로서의 교회이다.

여기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코스'(oikos)는 통상 '건물로서의 집'이나  또는 '그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로서의 집안(가족)'을 뜻한다.

 

코린토 전서 3장 16절이나 베드로 전서 2장 5절교회를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성전'으로, 히브리서 3장 5절이나 베드로 전서 4장 17절'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집안'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에페소서 2장 19절 이하에서는 이 두 개념이 결합되어 진술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이코'(oiko)는 이미 티모테오 전서 3장 4절과 5절,그리고 12절에서 줄곧 일관되게 '집안'(가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기 15절에서도 '건물'의 의미가 아니라 동일하게 '집안'(가족)이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교회는 한 분 하느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는 영적 형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하느님의 집안(가족)인 것이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라고 번역된 '에클레시아 테우 존토스' (ekkllesia theu zontos)사도 바오로가 피력한 두번째 교회관이다.

구약에서는 이방인이 섬기는 생명없는 우상과 의도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해 자주 주 하느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으로 표현하였다(신명6,15).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신약에서도 나온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전서 1장 9절에서 "사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명백하게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회심하는 것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에 계시면서" (여호3,10)와 같은 선언은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은 계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 머무를 것이다.  나는 너희의 하느님의 될 것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이같은 사상은 성경 계약의 기초를 이루며(탈출25,8; 29,45-46; 레위26,12; 시편114,2; 에제키엘37,27), 사도 바오로의 신학 사상에서도 두드러진다.

 

사도 바오로는 실제로 코린토 후서 6장 16절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라고 선언한 뒤에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교회관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큰 도전이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과연 하느님의 충만한 임재와 현존을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너무나 필요하고도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라고 번역된 '스튈로스 카이 헤드라이오마 테스 알레테이아스' (styllos kai hedraioma tes alletheias)가 사도 바오로의 세번째 교회관이다.

 

여기서 '진리'에 해당하는 '알레테이아스'(alletheias)의 원형 '알레테이아'(alletheia)부정사 '아'(a)와 '숨기다'(마르코7,24)라는 뜻의 동사 '란타노'(lantha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숨길 것이 없는 진심'이라는 뜻에서 '진리'를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인 진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에페4,25; 로마9,1) 더 많은 경우에는 그리스도교에서만 발견되는 구원의 진리를 가리킨다(에페4,21; 콜로1,5).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진리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요한1,14.15; 14,6).

여기서도 그리스도교 특유의 구원의 진리나 그리스도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기초'(터)로 번역된 '헤드라이오마'(hedraioma)는 본래 '굳게 하다', '견고케 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헤드라이오오'(hedraioo)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건물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대지'를 의미한다.

 

교회에 대해 이러한 의미의 '기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단이나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는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진리를 확고하게 지켜야만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기둥'으로 번역된 '스틸로스'(styllos)신약에서 여기와 갈라티아서 2장 9절, 묵시록 3장 12절에서만 등장한다.

 

사실 기둥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해서 건물의 외양을 높이 드러냄으로써 멀리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 '이라는 뜻은 기둥이 건물 안쪽에서 건물을 높이 떠받들듯이 교회도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내세우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의미한다.

 

사도 바오로는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라는 은유적 표현으로서, 진리를 견고하게 지지하여 거짓 가르침의 공격으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를 높이 쳐들어 세상에 진리를 알려야 하는 교회의 두 가지 책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복음(루카7,31-35)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1-32)

 

원문은 결과 접속사 '운'(un; then)으로 시작되어 '그러므로(그렇다면) 무엇에 비유할까?'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결과 접속사 '운'(un)루카 복음 7장 31절이 29절과 30절에 이어 계속되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으로써, 7장 29절과 30절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와 세례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의 경륜을 거절하고 저버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염두에 두고, 31절부터 34절까지 장터에 노는 아이들의 비유를 통해 그들의 완고함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비기랴?'로 번역된 '호모이오소'(homoioso; I can compare)원형 '호모이오오'(homoioo)형태나 성질 면에서 유사한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이다.

 

보통 '비유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파라발로'(paraballo) 동사는 '어떤 것을 다른 것의 곁에 놓다'라는 뜻으로서, 하나와 다른 하나를 견주어 비교하여 어떤 현상을 쉽게 설명해 주는데, '호모이오오'(homoioo)'파라발로'(paraballo)에 비해 매우 직설적 표현이다.

 

'호모이오오'(homoioo) 역시 어떤 두 대상을 놓고 비교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비유'라는 말보다는 '~와 같다'라는 직설적인 표현에 더 가깝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춤추어야 할 자리에 춤추지 않고, 애곡해야 할 자리에서 애곡하지 않는, 상황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아이들과 같았던 것이다.

 

또한, '이 세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가리키며, 더 넓게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저버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한편, 루카 복음 7장 32절아이들이 어른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흉내내어 노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피리와 애곡으로 상징된 결혼식과 장례식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기쁨과 슬픔을 대표하는 날이다.

이것은 당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에 연관지어져 있다.

 

세례자 요한이 죄사함의 세례를 베풀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을 외치는 것은, 그의 금욕적인 생활과 더불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비난과 무시를 받는 것이었다.

 

마땅히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슬퍼하며 죄사함의 세례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면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로부터 천국 복음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비난과 냉담의 태도로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그들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회개와 천국의 복음을 듣고도 무관심한 그들의 태도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장터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비유로 들어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가요? 복음말씀을 들으면 천국에 관해서 관심이 가나요?

바리사이들과 다른점이 있나요? 나는 아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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