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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루카13,18-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27 조회수1,37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0월 27일 화요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루카13,18-21)

 

1독서<둘이 한 몸을 이룸은 큰 신비입니다.>(에페 5,21-33)

21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3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5 남편 여러분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7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8 남편도 이렇게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9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시는 것처럼 오히려 자기 몸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30 우리는 그분 몸의 지체입니다.

31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둘이 한 몸이 됩니다.”

32 이는 큰 신비입니다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33 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화답송 시편 128(127),1-2.3.4-5(◎ 1ㄱ 참조)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너는 행복하여라너는 복을 받으리라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풍성한 포도나무 같고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보라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이렇듯 복을 받으리라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복음<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루카13,18-21)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에페5,21-33)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주인이신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1-24)

 

에페소서 4장 17절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구성원으로서 각 성도의 새 생활에 대한 실제적 권면을 주고 있는 바오로는, 이제 5장 21-33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상호 순종 명령과  대표적 예로서 부부사이의 상호 순종을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1)

여기서 '순종하십시오' 에 해당하는 '휘포탓소메노이'(hypotassomenoi)의 원형 '휘포탓소'(hypotasso)는 '~아래에' 를 뜻하는 '휘포'(hypo) '배치하다' 를 뜻하는 '탓소'(tass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문자적으로는 '~아래에 배치하다', '하위에 두다' 라는 의미이다.

 

이 동사는 본문에서 명령 분사 수동태로 쓰였으나, 이 수동태는 자동사의 의미를 나타낸다.

즉 상대방에세 순종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권위에 눌려 마지 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상대방보다 낮추어 섬긴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특히 소년 시절 예수님께서 그 육신의 부모를 '그들에게 순종하여 지냈다' 라는 진술에서도 쓰인 바 있다.(루카 2,51)

성도는 마치 예수님께서 그 부모를 자발적으로 공경함으로써 순종했듯이, 지체된 자들은 머리에게 자기 자신을 순종해야 한다.

 

바오로가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라고 한 말씀이나 본문에서 서로 순종하라고 한 말은 동일한 의미이다. 사랑의 최대 덕목은 섬김이고, 그것은 바로 종의 무조건적인 섬김이다. 게다가 그 섬김은 사랑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 순종과 사랑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에페5,22-6,9)

 

한편 그리스도를 경외함과 성도간에 서로 종처럼 순종하는 일은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한 루카 복음 10장 27절의 말씀처럼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종처럼 섬기지 않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경외하거나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22)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의 상호 순종을 명령한 21절에 이어 본절 이하에서는 그 대표적 예로서 부부 사이의 상호 순종 권면을 주고 있다.

22절 원문에는 '순종하듯 ~ 순종해야 한다' 는 동사가 없다. 21절의 '서로 순종하십시오' 에서 동사 '순종하다' 에 해당하는 '휘포탓소메노이'(hypotassomenoi)가 본문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동일한 주제 아래 하나의 예로 제시되는 본문의 경우에는, 굳이 동일한 동사를 반복해서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여자는 사람의 수를 셀 경우에 제외될 정도로 남자와 동일한 인격체로 취급받지 못했다.(민수1,25 ; 마태14,21) 

또한 본문 당시의 그리스 세계에서도 여자는 남자가 갖는 여러 가지 권리들을 누리지 못했다.

 

바오로 역시 본질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본문에서 여자를 향해 자신들의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사실은 순종의 모델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24절)이라는 데에 있다.

바오로는 남편을 그리스도로, 여자를 교회로 비유한다.(23,24절)

 

결국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매우 큰 유사점이 있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하여 각자의 역할을 배울 수 있으며,

반대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하여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몸의 구원자이신 것과 같습니다' (23)

교회와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비밀은 인간 사이의 부부 사이를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다' 에 해당하는 '아네르 에스틴 케팔레 테스 귀나이코스'(aner estin kephalle tes gynaikos ; the husband is the head of the wife)에서 동사 '에스틴'(estin) '~이다' 라는 뜻의 현재 직설법으로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항상 그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가 만물과 교회의 머리되심에 대해서는 바오로가 본서의 서두에서부터 강조해 온 것으로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도에 대한 주권을 보여준다.(에페1,22)

또한 그리스도는 성도가 자라가야 할 성장 모델로서의 머리이시기도 하다.(에페4,13)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정 안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것은 남편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의 모습을 일방적으로 닮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남편의 영적 수준이 아내의 수준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한 아내라면 자신보다 낮은 영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남편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무시하거나 자신이 남편의 머리가 되려고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잠언31,10-12)

왜냐하면, 훌륭하고 현숙한 여인의 기준은 주님을 경외함에 있고(잠언31,30),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그분이 자신에게 주신 남편을 존경하고, 그의 권위를 세워주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1코린11,3)

 

이제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은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사건을 통해서이기(콜로1,18)때문에, 교회와 성도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바오로는 본절을 통해 교회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순종의 정도' 보여준다고 한다면, 이에 나오는 24절의 '모든 일에서' 라는 말은 '순종의 범위' 를 보여준다.(1코린11,5)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5)

아내가 남편에게,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이 모든 일에 있어서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는 22-24절의 내용은 극심한 남녀 차별의 내용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오로는 결코 비인격적 남녀 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부부 사이에 있어서 아내가 남편에 대한 순종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 역시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절부터 30절에 이르는 여섯 절에 걸쳐 남편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하듯이 아내를 철저하게 사랑해야 함을 명령하고 있다.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는 철저히 강조되고 요구했으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한 사회에서 바오로는 남편들에게  단호하게 명령한다. 자신의 몸을 내어줄 정도로 자신의 아내를 사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사랑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아가파오'(agapao)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타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이성인 상대방에 대한 깊은 성적 욕망을 나타내는 '에라오'(erao)라는 동사와 가정 및 친구에 대한 인간적 사랑을 나타내는 '필레오'(philleo)라는 동사와 질적으로 다르다.

 

남편들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듯이,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을 해야할 것을 명령하면서 하느님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 사랑을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6)

그리스도는 교회를 씻어 거룩하게 하시려고, 또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려고, 자신을 내어주셨음을 밝히고 있다.

본문에서 '씻어'에 해당하는 '루트로'(lutro ; with washing)는 문자적으로는 '목욕'을 뜻하는 단어이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물로 씻어' 라는 표현을 몸을 씻는 육체의 행위로 보기보다는 죄를 정결하게 하기 위한 영적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물로 씻는 바로 이 행위는 세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구약 성경의 에제키엘서 16장 9절에서도 "나는 너를 물로 씻어 주고 네 몸에 묻은 피를 닦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는 구절에서, 물로 씻는 행위를 속죄를 위한 세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 나온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 (1베드3,21)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물로 씻는 행위를 말씀을 깨끗하게 하는 행위와 관련짓고 있다는 것이다. 본절에서 '말씀'에 해당하는 희랍어로 '로고스'(logos)가 아닌 '레마'(rema)이다.

이 둘을 비교하자면, '로고스' 말씀 자체 또는 말씀을 비유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반면에, '레마'는 입 밖으로 나온 진리의 말씀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세례를 베풀 때에 행해진 말씀을 염두에 두고 쓰인 표현이다. 이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세례를 준다'는 세례 예식의 기도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례 때 행하는 강론 말씀을 의미할 수도 있다.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남편은 가정의 머리, 아내는 가정의 심장' 이라 하셨다. 머리는 지성의 주체로서 권위를 말하고, 심장은 애정의 주체로서 모성애를 말한다.

그리고 그 권위는 가족 구성원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가족공동체를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권위를 말한다. 그럴 때 남편은 아내와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또한 심장에서 혈관을 통해 온몸의 피가 하루에 지구의 두바퀴 반을 돈다고 한다.

그만큼 아내는 남편과 자녀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공급해야 한다.

가정 안에서 남성이 남성다움을 구현하는 것은 가장, 남편, 아버지로서 세 가지 역할을 다 잘할 때이다. 가정 안에서 여성이 여성다움을 구현하는 것은 주부, 아내, 어머니로서 세 가지 역할 다 잘할 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수님처럼 마지막 피 한방울, 물 한방울 다 쏟기까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는 희생과 헌신이 있는데, 왜 가정이 망가지고 해체가 되겠는가?

 

특히 이 시대 갈 곳없는 아버지들을 보면서, 아내는 밥상에서 자식보다 남편의 밥을 먼저 퍼주고, 남편이 출근할 때 자녀들로 하여금 아버지께 인사를 시키고, 한달동안 고생하여 번 월급이 통장안으로 들어왔을 때, 식탁이 달라지는 조그마한 사랑의 반응을 통해, 잃어버린 가장과 아버지의 권위를 살려주는 것이 가정의 심장으로서 아내가 성모님처럼 할 일이다


 

 

오늘의 묵상

1955년 12월 1일,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사는 흑인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요구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들은 버스 이용을 거부하며 항의하였고, 마틴 루서 킹을 중심으로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이 전개됩니다. 

결국 법원은 로자 파크스의 벌금형을 무효로 하고 몽고메리 버스의 인종 차별을 없앨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듬해에는 공공 운송 수단에서 인종 차별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1964년에는 공공시설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시민권법이 제정됩니다. 로자 파크스의 작은 행동이 많은 흑인에게 힘을 주었고 인종 분리법 폐지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주 조그마한 겨자씨와 같아서 처음에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을 정원에 심으면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이 보금자리를 꾸밀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겨자씨와 같은 작은 실천 하나가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겨자씨를 이 사회라는 정원, 우리 가정이라는 정원에 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심을 때 정녕 하느님 나라는 자라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몸소 겨자씨가 되시어 골고타라는 정원에 묻히시고 당신 스스로 썩어 없어지심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십자 나무를 남기시지 않으셨습니까?
(한재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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