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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7. 로마인들의 편지 / 시몬 타싸[3] / 1마카베오기[4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15 조회수896 추천수3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 로마인들의 편지(1마카 15,15-24)

 

한편 헬레니즘의 시대가 막을 내리려는 그 즈음, 누메니오스와 그의 일행은 여러 임금과 여러 나라로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로마에서 돌아왔다. 사실 누메니우스는 시몬이 로마인들과 맺은 동맹을 재확인하려고 무게가 천 미나나 되는 금 방패를 가지고 로마로 보내진 이다(14,24 참조). 그렇지만 그 내용은 일부 저자의 오류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시몬 시대의 이 계약 갱신은 로마인들이 먼저 해 준 것이 아니라, 기원전 142년에 권좌에 오른 시몬이(13,41) 누메니오스를 로마로 보내어 요청하고(14,24), 그에 따라 로마인들이 긍정적으로 대답함으로써(15,16)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순서가 잘 맞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른 일화들이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잘못 배치된 결과이다(15,15 참조).

 

그래서 이를 정확히 풀이해본다면, 시몬이 유다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을 당시에는 로마의 세력이 확대되는 때였다. 그래서 유다 역시 주위에서 인정을 받는 안정된 나라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었기에, 로마에서조차 인정을 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몬은 동생 요나탄이 이전에 로마와 맺은 동맹을 갱신하고자 로마에 대표를 보낼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그 때 파견된 이가 누메니우스였다.

 

이미 소개한 바대로 유다 마카베오의 시대에 유다인들 내에서는 국제 정세를 이끌려는 로마와 우호 동맹을 맺기를 원하는 마음이 하나 둘 있었다. 그래서 유다는 아코츠의 손자며 요한의 아들인 에우폴레모스와 엘아자르의 아들 야손을 로마로 보내어 우호 동맹을 맺게 하였다. 이는 유다 마카베오가 그리스인들의 왕국이 이스라엘인들을 완전히 자기들의 노예로 부리는 것을 보고, 그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담겨있었다.

 

사실 그즈음 요나탄이 죽었다는 소식이 로마는 물론 스파르타에까지 전해지자 사람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그러나 요나탄의 형 시몬이 대사제가 되어, 그 지방과 그곳의 성읍들을 다스린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인들은 자기들이 시몬의 동생 유다와 요나탄과 맺었던 우호 동맹을 갱신한다는 문서를 동판에 새겨 그에게 보냈다. 그만큼 시몬의 위치는 확고히 구축되어 있었고, 유다는 로마의 아프리카 진출 등에 중요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로마에 동맹 계약의 갱신을 요구한 시몬의 뜻도 반영되었을 게다.

 

아무튼 누메니오스가 로마에서 가져온 그 편지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로마인들의 집정관 루키우스가 프톨레마이오스 임금에게 인사합니다. 유다인들의 사절들이 우리의 벗이며 동맹자로서 옛 우호 동맹을 갱신하려고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시몬 대사제와 유다 백성이 보낸 이들로서, 천 미나 되는 금 방패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임금과 여러 나라로 편지를 써서, 유다인들에게 해를 입히지 말고 그들이나 그들의 성읍들이나 지방과 싸우지 말며, 그들을 공격하는 적들을 도와 함께 싸우지도 말라고 당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동맹의 갱신의 뜻을 담고 있는 인사로 시작했다.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피스콘에게 자기 이름으로 이 편지를 쓰는 루키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142년에 집정관이었다. “또 우리는 그들의 방패를 받는 것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간악한 자들이 더러 자기 지방에서 여러분에게 도망쳐 가면, 그들을 시몬 대사제에게 넘겨 그가 그들을 유다인들의 법대로 처벌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집정관은 이러한 편지를 데메트리오스 임금을 비롯하여 아탈로스, 아리아라테스, 아르사케스에게 쓰고, 또 삼프사케스, 스파르타, 델로스, 민도스, 시키온, 카리스, 사모스, 팜필리아, 리키아, 할리카르나소스, 로도스, 파셀리스, 코스, 시데, 아르왓, 고르티나, 크니도스, 키프로스, 키레네 등 모든 나라에 써 보냈다.

 

아마도 루키우스가 이 편지를 쓸 때에, 로마인들은 데메트리오스 임금이 파르티아인들에게 사로잡힌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아탈로스 2세는 페르가몬(기원전 159-138), 아리아라테스 5세는 카파도키아(기원전 162-131) 임금이었다. 그리고 아르사케스 6세로도 불리는 미트리다테 1세는(기원전 171-138) 파르티아 제국의 창건자이다(14,2 참조). 여기에서 처음으로 로마와 파르티아 제국 사이의 접촉이 언급된다. 그리고 기원전 150년경 근동의 정치 상황을 보여 주는 이 지명록은 독립 지역과 섬, 그리고 그곳의 도시들이 뒤섞인 채 소개된다. 이렇게 루키우스는 그 사본을 시몬 대사제에게도 써 보냈다.

 

그즈음 안티오코스 임금은 두 번째로 도르를 향하여 진을 치고, 계속해서 군사들을 그곳에 투입하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8. 안티오코스의 배신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누메니오스,에우폴레모스,엘아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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