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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31 조회수1,900 추천수4 반대(0) 신고

220731. 연중 제18주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 연중 18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어리석음’과 ‘참된 지혜(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엘 1,2)는 것을 말하면서 진정한 참된 지혜를 찾도록 인도합니다.   

 

<제2독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콜로 3,1-3)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12,13) 이 사람은 겉으로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듯하지만, 속셈은 손해보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니, 마음속에 탐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우리 자신들의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형제에게 손해보고 싶어 하지 않고 있다면, 말입니다. 나의 편리와 이익을 계산하며 형제에게 시간과 노고를 내어주는데 인색할 때가 바로 그럴 때일 것입니다. 또한 나의 뜻과 나의 계산으로 이해타산을 따지고 있을 때가 바로 그럴 때일 것입니다.   

 

만약에, 내 마음 안에 탐욕과 이해타산이 아닌, 사랑이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손해 보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진정 사랑에 가득 찬 아우였다면,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스승님, 제 형더러 저의 유산을 가지라고 일러 주십시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옆과 뒤, 앞과 위를 보지 못하는 탐욕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 풍성한 수확을 어떻게 해서 얻게 되었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수확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즐길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하느님도, 주위의 가난하고 굶주리는 형제들도 보지 못하고, 오직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과 재물만 보았습니다. 그는 탐욕으로 눈멀었고, 하늘에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함으로 눈멀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쌓아 둔 재물에 희망을 걸면서, 혼자서 그 모든 것을 영원히 누리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의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금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베풀면서 성실히 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일을 대비하는 삶이 됩니다. 사실, 자신만이 혼자 차지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  

 

그렇습니다. 재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재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명이 무엇에 달려 있는가?   

 

당연히 주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이 재산의 주인이 아니요 자기 생명의 주인도 아님을 알고,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떠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인께 달려 있는 이는 탐욕을 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탐욕의 온상지인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떠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탐욕으로부터 떠나지 못함은 아직 진정한 값진 것을 찾지 못해서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값진 것을 찾게 되면, 일체의 다른 것들로부터는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그 값진 것 앞에서는 상대화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마저도 말입니다. 그러니 탐욕은 자신을 가장 값지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 오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탐욕으로부터 떠난 사람은 자신에게 소유당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입니다. 묘한 것은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가지면 전부를 가진 것이 됩니다.”(안토니오 더블유). 예수님을 가지게 되면, 다른 무엇들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됩니다.   

 

데레사 성녀는 말합니다.  

 

 “나에게는 하느님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제가 사제수품 성구로 택했던 구절을 되내어 봅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로마 2,2)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하오니, 주님, 전부인 당신이 저를 차지하소서. 제 마음의 곳간에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채우게 하소서. 오늘, 제가 당신께 온전히 소유당한 자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루카 12,15) 주님! 모든 탐욕을 경계하게 하소서. 물질이나 재물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게 하소서. 명예와 권력, 학문과 재능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탐욕을 경계하게 하소서. 제 마음의 곳간에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간직하게 하소서! 주님, 저를 차지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께 달려 있나이다. 아멘.   

 

(이 영근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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