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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탐구 생활12: 미사의 첫머리에 새기는 십자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1 조회수6,754 추천수0

전례 탐구 생활 (12) 미사의 첫머리에 새기는 십자가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인 신자들이 성가를 부르고 행렬을 이루며 하느님 앞에 나와 있음을 확인한 다음, 사제는 신자들과 함께 십자 성호를 그으며 미사의 ‘첫 말씀’을 선포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신자들은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십자 성호는 매우 일찍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 대한 신심을 표현하는 소중한 동작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 씻고, 먹고, 불을 켜거나 끌 때, 잠자리에 들 때, 어딘가로 떠날 때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등 일상의 모든 일마다 십자 성호를 긋는다는 오래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오른손 엄지손가락만으로 이마에 작게 십자 표시를 했습니다. 현행 전례에서는 복음을 읽기 전에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긋는 성호,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며 긋는 성호, 견진성사 때 축성 성유를 이마에 바르며 긋는 성호에서 아직도 그렇게 합니다.

 

4세기경부터 십자 성호를 긋는 동작은 점점 몸의 다른 부분으로 확장되어서, 오늘날 십자 성호는 로마 전례의 경우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다 써서 이마와 가슴,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 순으로 짚어 나가고, 동방 전례의 경우 오른손 세 손가락(엄지와 약지, 중지)으로 이마와 가슴,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 순으로 긋습니다.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하는 말(성호경)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인사와 명령에서 왔습니다(마태 28,19). 십자 성호가 미사의 도입부에 들어오게 된 것은 14세기부터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사제 혼자만 성호경을 낭송하면서 십자 성호를 그었습니다. 공의회 이후 미사 전례 개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십자 성호를 긋는 동작과 말(성호경)에는 관심을 덜 기울인 채 종전에 하던 대로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옛 교부들의 전통을 따라서 주례 사제와 신자들이 나누는 인사(“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를 미사의 첫 말마디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바오로 6세 교종은 모든 일의 시작을 십자 성호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의 소중한 신심이 미사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또 이 말과 동작에 신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전례 역사상 처음으로 대화체로 구성된 성호경을 갖게 되었고, 십자가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몸에 십자가를 새기는 이 소박하지만 강력한 동작은 우리가 처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순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생 거듭거듭 이 동작을 반복합니다. 죽음 속에 생명이 있고, 고통 속에 구원이 있다는 역설을 우리는 이마와 가슴, 양어깨를 눌러가며 되새깁니다. 거기에는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 말은 아니라는 믿음도 들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 성호는 또한 제자됨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 육체에 새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무늬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권능 안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되새깁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이 십자가를 체험합니다. 개인적인 상실이나 병고를 통해서, 자연재해나 인간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로 인한 집단 트라우마를 통해서 사람들은 죽음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인간의 고통 사이에 다리를 놓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분의 넘치는 사랑 때문에 이 가련한 피조물과 ‘함께 고통받으신다’는 사실을 묵상하도록 이끕니다.

 

[2020년 3월 22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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