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2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1-12-04 조회수1,583 추천수11 반대(0)

며칠 전입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교육이 있어서 연수원으로 갔습니다. 연수원에서는 숙소를 배정하게 됩니다. 저의 방은 317호 였습니다. 지나가며 보니 다른 방들은 독방이거나, 두 명이 지내는 방이었습니다. 제방은 317호인데 2층에 있었고, 어렵게 찾아가보니 그곳은 20명이 한 방에 있었습니다. 그나마 저의 침대는 아직 자리에 없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20명이 함께 지내는 것도 자신이 없었고, 아직 침대도 없었기에 자리를 배정한 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담당자는 제가 잘 아는 선배였습니다. 선배는 곧 침대를 갖다 놓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불편하지만 며칠만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다같이 20명이 사용하는 방이었다면 저는 그렇게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독 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서 불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사제라는 이유로 특별한 대접을 받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지순례 중 버스에 탑승할 때면 내리기 쉬운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두 명 씩 침실을 배정받지만 저는 독방을 사용했습니다. 식사를 할 때도 맨 먼저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봉성체를 갈 때도, 환자 방문을 할 때도 봉사자들이 차량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은 그동안 제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살았음을 돌아보게 한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 카톡으로 가슴이 뭉클한 이야기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큰 아들의 집으로 갔는데 아들의 집 비밀번호가 어머니의 집 비밀번호와 같았습니다. 큰 아들은 어머니가 비밀번호를 쉽게 기억하도록 어머니의 집과 같은 비밀번호를 만들었습니다. 둘째 아들의 집도 같은 비밀번호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집으로 갈 때는 적어도 비밀번호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었습니다. 물론 아들의 결단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기꺼이 받아준 며느리들의 배려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라면 언제든 오실 수 있도록 비밀번호를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 같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아파트의 이름이 대부분 어려운 외국 말인 것은 시골에서 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미국도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려고 하였습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에 긴 장벽을 설치하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가족들과 친지들이 서로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이 된 후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람페두사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이 도착하는 항구였습니다. 교황님의 방문 후에 유럽은 난민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국경을 열어 주었습니다. 교황님은 북한이 초청을 하기만 하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방북으로 북한의 신앙의 문도 활짝 열리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높은 산은 깎아내고, 골짜기는 메운다.’입니다. 이는 인종, 혈통, 세대, 이념, 사상, 신념, 신분, 종교 때문에 차별과 멸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겪으면서 장벽과 차별로는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연대와 협력 그리고 나눔과 사랑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백신과 치료제는 공유제로 국가와 빈부의 차별 없이 나누어야 합니다. 인류가 함께 노력하여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나가야만 우리는 비로소 마스크를 벗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품성은 사랑이고, 하느님의 모습은 끝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희생과 나눔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을 닮은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인권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높은 산을 낮게 하고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험한 길을 고르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험한 산과 거친 들판을 건너고서야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릴 수 있었듯이 우리 안에 직면한 문제들을 풀어내고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일도 쉬운 일만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우리들의 사랑이 참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출 때 그래서 우리가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아름다운 기도로 남겨 주었습니다.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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