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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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1년 2월 3일 수요일

[(녹)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오늘 전례

또는
[홍] 성 블라시오 주교 순교자 또는
[백] 성 안스가리오 주교

입당송

시편 106(105),47
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본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히브리 신자들을 자녀로 대하시는 주님의 훈육을 견디어 내며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가르치시는 것을 듣고 놀란 이들이 못마땅하게 여기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13-14.17-18ㄱ(◎ 17ㄱㄴ)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우리의 됨됨이를 익히 아시고,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기억하시네. ◎
○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고, 그분의 의로움은 대대손손, 그분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주님의 제대에 예물을 올리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저희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또는>
마태 5,3.5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서는 그 장엄한 시작을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 마르코 복음사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예수님의 참된 신원은 “하느님의 아드님”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각이 언급됩니다.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 이것은 나자렛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시각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관점,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과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의 긴장이 오늘 복음에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께서는 그저 마리아의 아들이고 목수였을 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마르 1,22 참조), 예수님을 훌륭한 분으로 인정합니다(마르 7,37 참조).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시각이 매우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적을 행하시지만, 반대로 목수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하느님의 아드님? 아니면, 나자렛 출신 목수? 그분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행위를 결정합니다.
(박형순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