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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0년 6월 24일 수요일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24번 내 맘의 천주여 영성체 성가 178번 성체 앞에
예물준비 성가 211번 주여 나의 몸과 맘 165번 주의 잔치
216번 십자가에 제헌되신 152번 오 지극한 신비여
파견 성가 21번 지극히 전능하신 주여

세례자 요한은 사제였던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친척인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주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은, 구약과 신약을 이어 주는 위대한 예언자이다. 그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비윤리적 생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 아내의 간계로 순교하였다. 그는 ‘말씀’이신 주님의 길을 준비한 ‘광야의 소리’였다.

입당송

요한 1,6-7; 루카 1,17 참조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그는 빛을 증언하러 왔다.<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복된 세례자 요한을 보내시어
하느님 백성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맞이하도록 준비하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영신의 기쁨을 주시고
모든 신자의 마음을 구원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9(138),1-3.13-14ㄱㄴ.14ㄷ-15(◎ 14ㄱ)
◎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 당신은 제 오장육부를 만드시고, 어미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나이다.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당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옵니다. ◎
○ 제 영혼이 잘 아나이다.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땅속 깊은 곳에서 짜일 때, 제 뼛속까지 당신께 드러났나이다. ◎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루카 1,76
◎ 알렐루야.
○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 되어 주님에 앞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예물기도

주님,
복된 세례자 요한이 구세주께서 오시리라 예고하고
이미 와 계심을 증언하였으니
저희가 그의 탄생을 기뻐하며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감사송

<선구자의 사명>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에서
복된 요한을 뽑으시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특별한 영예를 주셨으니
그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선구자 요한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인류 구원이 다가왔음을 기뻐하였고
태어날 때에 구원의 큰 기쁨을 알렸으며
모든 예언자 가운데에서 그 홀로
속죄의 어린양을 보여 주었나이다.
또한 그는
흐르는 물을 거룩하게 하시는 세례의 제정자 주님께 세례를 베풀었으며
피를 흘려 주님을 드높이 증언하였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며 끝없이 외치나이다.

영성체송

루카 1,78
우리 하느님이 크신 자비를 베푸시니,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어린양의 잔치로 기운을 되찾고 비오니
그리스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복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는 저희가
세례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를 알아 모시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가 아니라 요한이라고 짓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부른다면 당시 관례를 따르는 것입니다. 반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른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즈카르야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아버지처럼 사제가 되어 명망을 얻고 존경받으며 안정된 삶을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 요한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언자가 되어 명망과 존경보다는 박해를 받고, 기득권의 삶보다는 광야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배 한 척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선장이 갑판 위에서 보니 어떤 불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장은 확성기에 대고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남쪽으로 10도를 회전하시오.” 그러자 저쪽에서 즉각 반응이 왔습니다. “그 배가 북쪽으로 10도를 회전하시오.” 선장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외쳤습니다. “이 배는 거대한 함정이란 말이요. 그쪽이 움직이시오.” 그러자 상대편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쪽이 움직여야만 하오. 이곳은 섬이고 나는 등대지기요!”
섬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배가 움직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하느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맞게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느님께서 움직여 주시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 즈카르야는 혀가 풀려 찬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 삶 또한 찬양이 될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