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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백)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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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515년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났다.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간 그녀는 평생을 완덕의 길에 정진하며 살았다. 데레사 수녀는 수도회의 발전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맞닥뜨렸으나 주님께 매달리며 곤경을 이겨 나갔다. 『자서전』, 『완덕의 길』 등 수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긴 그녀는 1582년에 세상을 떠났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이 데레사 수녀를 시성하였고,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성녀는 ‘아빌라의 데레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입당송

시편 42(41),2-3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성령을 통하여 복된 데레사를 뽑으시어, 교회에 완덕의 새로운 길을 보여 주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그의 거룩한 가르침을 따라 참된 성덕의 열망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누구나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부터 모든 피조물 안에서 당신의 신성을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은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온갖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어느 바리사이의 집에서 식사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다. 바리사이는 이에 놀랐지만, 예수님께서는 잔과 접시의 겉보다도 마음속이 깨끗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16-25
형제 여러분,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18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과 불의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가 하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19 하느님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이미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명백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21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22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23 그리고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24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두시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25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9(18),2-3.4-5ㄱㄴ(◎ 2ㄱ)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
○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고, 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 나가네. ◎

복음 환호송

히브 4,12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데레사의 정성 어린 봉헌을 기꺼워하셨듯이, 저희 예물도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어전에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89(88),2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가족에게 천상 양식을 베풀어 주셨으니, 저희도 복된 데레사를 본받아, 영원토록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즐거이 노래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시선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느 바리사이의 시선과 예수님의 시선입니다.
바리사이는 외적인 것을 통하여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는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행위를 보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판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적인 것을 통하여 판단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마음속에 탐욕과 사악이 가득한 것을 보시고 그들을 위선적이라고 나무라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시선은 외적인 것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형식적인 율법 준수가 중요합니다. 그 반면, 예수님의 시선은 내적인 데에 있기 때문에 내적인 변화에 주목하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시면서도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포하시고, 과부의 보잘것없는 헌금 속에 있는 ‘헌신’을 두고 칭찬하십니다.
외적인 시선을 갖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것,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판단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시선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것,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시선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적인 시선은 하느님의 시선이며, 다른 피조물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는 허락된 시선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늘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창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손수 하신 일을 경탄합니다. 낮이 낮에게 거는 말과 밤이 밤에게 전하는 지식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압니다(시편 19〔18〕,2-5 참조).
인간이 내적인 시선을 간직하려면 하느님과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세상으로 흐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내적인 시선으로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