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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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 월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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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연중 제23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119(118),137.124
주님, 당신은 의로우시고 당신 법규는 바르옵니다. 당신 종에게 자애를 베푸소서.

본기도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벗으로 대하시며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는 계획을 밝히신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설득하여 의인 열 명만 있어도 파멸시키지 않으시겠다는 다짐을 받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단호한 결단을 요구하신다. 곧 경제적인 안정이나 가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바라신다(복음).

제1독서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8,16-33
사람들은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을 16 떠나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배웅하려고 함께 걸어갔다.
17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18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민족이 되고,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9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그가 자기 자식들과 뒤에 올 자기 집안에 명령을 내려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여 주님의 길을 지키게 하고, 그렇게 하여 이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그대로 이루려고 한 것이다.”
20 이어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3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자리를 뜨셨다. 아브라함도 자기가 사는 곳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3-4.8-9.10-11(◎ 8ㄱ)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
○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8
◎ 알렐루야.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알렐루야.

복음

<나를 따라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둘러선 군중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19 그때에 한 율법 학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스승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21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하여 주님과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42(41),2-3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생명의 말씀과 천상 성사로 믿는 이들을 기르시고 새롭게 하시니, 사랑하시는 성자의 큰 은혜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

오늘의 묵상

어제 일 복음과 병행 구절이기도 한 오늘 복음에는 우리에게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사실 유다인들에게 부모의 장례식은 중요한 의무였습니다(창세 50,5 참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고 대답하십니다. 언뜻 보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무나 냉혹하게 느껴집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그 시대의 배경을 아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보통 장례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그 기간에 유족들은 바깥에서 다른 사람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자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은 이미 장례 기간이 끝났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다만 관례에 따르면, 장례가 끝나더라도 일 년 뒤 육신이 썩어 뼈만 남게 될 때, 아들은 특별한 상자에 그 뼈를 넣어 다시 장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결국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 달라는 제자의 요구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탈상을 하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탈상을 통하여 죽음을 슬퍼하는 것보다도 당신을 따르며 생명을 노래하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러한 슬픔을 주는 죽음보다도 더 큰 분이신 당신을 믿고 따르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단호한 결단’은 몰인정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관점을 뛰어넘는 하늘 나라의 신비, 곧 생명의 신비를 바라보며 우리의 소모적인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초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