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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사설/칼럼
2021.12.0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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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연의 드라마 속으로] 넷플릭스에서 만난 21세기의 지옥
백소연 레지나(가톨릭대 조교수)


드라마 지옥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최근 넷플릭스 TV 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K-콘텐츠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이다. "10년간 회자될 작품"이라며 일부 외신이 극찬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는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인간의 죄악과 신의 심판이라는 문제야말로 시공을 초월해 다양한 장르 안에서 거듭 이야기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오래된 상상력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동시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비판, 지상파 채널에서 쉽게 구현하기 어려운 화려한 연출 덕도 크겠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근간을 이루는 질문들이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옥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지옥행을 고지하고 이를 시행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지옥행 예고와 해당 일에 나타난 무시무시한 괴물 형상의 존재들, 그리고 그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며 처참히 살해당하는 사람의 모습이 연이어 생중계되면서 사회는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그 초자연적 현상을 신의 심판이라 명명하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스스로 선하게 살려고 하기보다는 새진리회라는 신흥 사이비종교에 의탁해 그 교리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려 든다. 교단의 이익에 반하는 이들을 지목하여 집단 폭행하고 살인마저 불사하는 사이비종교의 만행을 보면서도 수많은 사람은 불의를 방관하고 심지어 지지한다.

신의 뜻을 전한다는 미명 아래 독점적 권력을 휘두르는 새진리회의 의장단과 교인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르는 숱한 범죄와 그것을 용인하는 세계는, 지옥행을 예고하는 사자의 존재나 그 너머에 있을 지옥보다 더 무시무시해 보인다. 그러나 이 끔찍한 광기의 폭력 앞에서, 소수의 어떤 이들은 용기를 내어 맞선다. "공포가 아니면 무엇이 인간을 참회"하게 만들겠냐며 반문하던 새진리회 의장의 말과 달리, 민혜진 변호사를 위시한 이들은 "뜯겨 죽을까 봐 선하게 사는" 대신 그 마음의 공포마저 내려놓게 만드는 선한 정의를 선택한다.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는 이들의 사랑과 희생은, 사자들이 예고하는 죽음과 지옥행, 그 예외 없는 상황 속에서 마침내 예외의 기적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시즌 1의 예상치 못한 마지막 장면 역시 과연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며 시즌 2를 기다리게 하고 있다.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참변 앞에서 사람들은 때때로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타인에게 그 죄를 돌려 고통의 원인을 구하고자 한다. 혹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 이 땅의 정의가 하늘나라에서는 마침내 이루어지리라 믿으면서도, 불의와 그에 대한 대가는 늘 타인의 몫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언제나 심판은 하느님의 몫이며, 그 엄중한 심판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단죄의 열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창녀를 감싸 안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처럼, 다른 이의 죄의 경중을 따지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용서, 그리고 사랑이다.

넷플릭스의 지옥은 사자들의 무시무시한 지옥행의 예고와 죽음의 시연 장면보다 끔찍한 지옥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섣불리 판단하여 타인을 쉽사리 단죄하려 드는 인간의 어리석음, 공포와 무지 속에서 더 큰 불의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추악함에 있음을 지적한다. 결국, 이 드라마는 21세기의 지옥도(地獄圖)야말로 이러한 인간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해 주었다 할 것이다.

                                                                  백소연 교수